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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어딘가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틀림 없어. 우주 어딘가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갔다.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에는 반입자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말 알지. 내가 어떤 것에 힘을 가하면 그에 반하는 힘이 작용하는 거야. 모든 생명체는 우주로 보자면 어떤 힘이 작용한 결과야. 그렇다면 그에 대한 동일한 반작용의 힘이 가해지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반입자는 탄생하는 거야. 그것이 이 광대한 우주, 그러니까 칼 세이건이 빌리언 오브 빌리언이라고 표현한 끝없는 시공의 어딘가에 반드시 있는 거야. 여기 서 있는 너와 나도 우주 저 편에 또 하나가 존재하는 거지. 아니, 하나가 아닐 수도 있어. 수 없는 너와 내가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서로 다른 크기를 한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거야. 알겠니? 


  그가 이처럼 열변을 토로하고 있는 까닭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보았을 법한 새하얀 토끼를 카메라에 담으려다가 놓쳤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잔디밭 위로 나와 별 경계심 없이 크로버를 주워 먹던 엘리스 토끼는 그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자 사진 찍히는 것따위 질색이라는 양 깡총 뛰어서 수풀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평일이라 인적이 드문 올림픽 공원의 빈 공터를 노을이 내려앉아 채우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겨울의 초입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유명한 사고 실험이 있어. 밀폐된 상자 속에 고양이를 넣어 두고 그곳에 독가스 유포장치를 설치해두는 거지. 물론 이 부분이 굉장히 끔찍하고 동물보호협회에 소송을 당할만한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이건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때는 아직 그런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눈 감아주고 넘어가도록 하자고. 물론 네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논의를 하고 싶다면 더 해도 좋지만 말야. 무튼, 이 독가스 유포장치는 방사선 감지 센서에 의해 작동되도록 설치되어 있어. 방사선 중 알파입자를 감지하게 되는 순간 독가스는 상자 안에 가득 차고 고양이는 죽는 거지. 오, 하느님. 그래 고양이에 대한 조문은 다음에 하도록 하고 우선 이 실험 얘기를 계속하자. 방사선 검출 장치는 라듐이라고 하는 물질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알파입자를 감지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는데 라듐은 시간당 50%의 확률로 알파입자를 배출해. 따라서 한 시간 뒤에 상자를 열었을 때 50%의 확률로 고양이는 죽었을 수도 있고,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지. 우리는 상자를 열어보기 이전까지는 고양이의 생사를 알 수 없어. 그렇다면 상자를 열어보기 전의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놀랍게도 양자이론에 의하면 상자 속에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이 단지 우리 머릿속의 가정이 아니라 입자의 차원에서는 실재하는 현실이라는 거지. 그러니깐 그런 거야. 우리가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한다면 말야. 아, 너는 무신론자였던가. 그래도 이건 그냥 가정이니까, 이프라고 생각하자고. 신이라면 말야. 죽어 있는 너와 나, 그리고 살아 있는 너와 나를 동시에 생각하는 거지. 그러다가 이 세계라는 상자의 뚜껑을 신이 여는 순간 너와 나는 죽어 있거나 살아 있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거야. 수 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동시에 다차원적으로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뚜껑을 열어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이 다른 거지. 이건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휴 에버렛이라는 과학자가 한 말이야. 그는 1930년에 태어나 1982년에 죽었지. 어때 이해하겠니. 


  그래서 엘리스의 토끼가 어디로 갔다는 거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종종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아니다. 그뿐이 아니라 세상의 수 많은 다른 그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계는 내가 꿈꾸었거나, 기대했거나, 혹은 선택하려했던 수많은 나의 삶의 가능성이 타인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세계일지도 몰랐다. 타인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불교의 가르침과 같이 그들과 나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저 나라는 가능성이 무한히 펼쳐져 이루어진 세계일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 극한의 이기주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 앉은 그도 또다른 나일까. 그의 눈과 코, 입술, 바람에 미세히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살핀다. 곧 종말이 닥칠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폼페이의 사람처럼 그는 쉼없이 말을 잇는다. 


  우주 어딘가에 사는 또 한 마리의 토끼는, 물론 아까 걔와 같은 새하얀 토끼지. 어쩌면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언어를 지녔거나 직립보행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토끼가 지구의 인간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거지. 거대한 토끼들의 도시를 짓고, 지하철의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토끼를 상상해봐. 서로 싸울 때면 상대의 귀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공원을 산책하다가 크로버를 주워 먹으러 나온 벌거벗은 인간을 보고, 우주 어딘가에 또 한 마리의 인간이… 라는 가설을 세울지도 몰라. 당근을 원료로 한 음식이 수백 종이 넘겠지. 당근국수, 당근냉면, 당근탕, 당근깍두기 등등. 아, 우주는 지나치게 광할하고 어두워. 그리고 점점 서로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지. 우주를 가득 채운 별의 빛이 우주 전체를 여전히 환하게 밝히지 못하는 이유야. 빛이 우주를 채우는 속도보다 더 빨리 혹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별과 별이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는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서로의 진심이 서로에게 가닿는 속도보다 더 빨리 사람들은 서로 이별하고자 하니까 말야. 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취해 덩달아 우주 어딘가에 사는 또 한 마리의 토끼를 떠올렸다. 머나먼 미래에 빛보다 빠르지만 안전한 우주선을 타고 토끼들이 사는 별에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가장 유명한 국립 공원에 가서 가장 매력적인 토끼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거다.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말이죠. 우주 어딘가에 토끼들이 사는 별이 있을 거라고 상상을 했거든요. 그런데 실은 정말로 그 순간에도 우주 어딘가에 있었던 이 별에서 당신이 살고 있었던 거에요. 당신은 거대한 도시에 살고, 지하철의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했던 거에요. 뭐, 글쎄 유명 연예인의 비화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젊은 시절이니까요. 그러면 또 한 마리의 토끼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시절 우주 어딘가에 사는 또 한 마리의 인간에 대해 생각했어요 라고.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수풀 속으로 달아나버린 토끼가 무척 애틋하게 느껴졌다. 토끼가 사라져간 수풀 쪽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먼 미래의 연인이여 안녕.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도 느꼈겠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것을. 신은 우리가 함께 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 그렇지 않은 삶의 뚜껑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토끼가 사라져간 수풀 쪽을 응시했다. 우주 어딘가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혹은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가 함께 할 삶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애써 오른 언덕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별은 어째서 태어나, 서로 멀어져 가는 것일까. 사람은 어째서 태어나, 서로 멀어져 가는 것일까. 먼 미래의 연인인 우주 토끼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나기 위해서지요. 피식 웃음이 났다. 





2011. 11.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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