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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우주 속에 홀로

멀고느린구름 2011. 9. 1. 19:54
 



   눈을 떴더니 우주 속에 홀로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5분 정도밖에는 기억할 수 없었다. 앞은 물론 뒤로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만져지는 것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만지다’라는 언어 자체가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살려달라고 외쳤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공기의 입자들이 공간 속에 못처럼 박혀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무엇도 흘러가지 않고 흘러들지 않았다. 망연해진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내가 앉은 곳이 바닥인지 허공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혹은 내가 정말 앉은 것인지 혹은 그대로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워버린 것인지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이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아도 칠흑, 떠도 칠흑이었다. 그래도 눈을 감았기 때문에 칠흑이라는 쪽이 안심이 되었다. 눈을 감고 어째서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허나 다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생각이 되었을 뿐 과거의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나는 빛을 온전히 차단시킨 상자 속에 갇힌 채 어디론가 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이곳은 너무 넓다. 넓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걸어보았다.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칫 멈추어 섰다. 앞으로 손을 내밀어 더듬어 보았다. 벽은 없다. 다시 몇 걸음 가다 멈칫. 또 몇 걸음을 가다가 멈칫이었다. 벽은 역시 없다. 어느 방향이든 마찬가지였다. 다시 주저 앉았다.

   생각해보면 역시 나는 이곳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태어난 생물체는 아닌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령 ‘만지다'라든가, ‘바람'이라든가, ‘벽', ‘색깔' 같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과연 눈을 감고 그것들에 대해 그려보았을 때는 희미하게 나마 어둠 속에 불이 켜지며 그네들의 형체가 나타나 보여지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그것들이 존재하던 곳에서 이곳으로 갑자기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나를, 어떻게, 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생각'뿐이라는 것이 점점 명백해졌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며,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 행위들은 여기에서 ‘의미'를 띠지 못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오직 ‘생각하는 것'만이 의미를 띠었다. 가만, 그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서 생각이 의미를 가진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은 어째서 생각을 하는가. 사람의 생각이란 결국 타인에게 전해질 때 의미를 획득하는 현상이다. 내 생각이 나에게 의미를 가질 때는 나를 타자화시킬 때이다. 내가 나를 남처럼 여기고 내 생각을 나에게 설득하거나, 나에게 설명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를 설득하는 나는 누구이고, 설득당하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그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곳에서 칠흑과 나 사이의 경계는 분명히 있는가. 나는 칠흑인가. 칠흑이 나인가. 나는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순식간에 대혼란에 휩싸여 버렸다. “눈을 떴더니 우주 속에 홀로였다.”라는 문장을 떠올렸을 때, 나는 분명 나를 사람으로 규정했다.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인간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람이란 것을 증명할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외에는. 그 마저도 나는 지금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면 나는 무엇. 우주는 무엇. 홀로된다는 것은 또 무엇. 나는 다시 겁에 질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방향으로나 무작정 달리는 것이었다. 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뜨거운 칠흑인가.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외쳤다. 목청이 터지고, 입가가 조금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식도를 타고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치밀어 올랐다. 피일까. 보이지 않았다. 목이 막혔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디까지 왔는지, 혹은 공간을 이동한 것인지조차 모를 곳에 다시 주저 앉아버렸다.

   혹시 블랙홀에 빠진 것은 아닐까. 그래, 나는 미국인으로 NASA 소속의 우주인인 것이다. 오바마의 재정 감축으로 위기에 처한 기관을 구하기 위해,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블랙홀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블랙홀을 발견했으나… 그만 거리 조정에 실패하여 시간의 지평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내 몸과 우주선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오직 나의 ‘생각’만이 블랙홀의 칠흑 같은 심장부 속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의문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홀로'라고 느끼나. 분명 함께 우주선에 탔던 승무원들의 ‘생각'도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백억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우리 우주에서 블랙홀은 수 많은 생명들의 ‘생각'을 흡수하지 않았을까. 나와 너는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나는 이 우주 속에 홀로인가. 생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길을 따라 달려가서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이런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눈을 떴더니 우주 속에 홀로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5분 정도밖에는 기억할 수 없었다. 앞은 물론 뒤로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만져지는 것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만지다’라는 언어 자체가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살려달라고 외쳤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2011. 9.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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