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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3년 3개월

멀고느린구름 2011. 9. 14. 22:54
철원으로 강제 이주를 당해 지낸지 어언 3년하고도 3개월이다.
이곳에서 살면서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저 죽고만 싶다고 생각한 날들이 많았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날보다
외롭고 쓸쓸하고 추웠던 날들이 훨씬 많았다.
다음 달이면 드디어 철원을 떠나
3년 3개월 전에 살던 파주로 돌아간다.

새 집을 오늘 계약했다.
계약을 끝내고 산책 삼아 동네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3년 3개월 전의 6월이었다.
행복한학교의 동료 교사들이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학교가 있는 문산에서 멀리 떨어진 유명한 샤브샤브집에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동료 교사들과 다음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로 그때의 그 샤브샤브 집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그곳이 이곳이었는지는 그 샤브샤브 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우연히 찾아내어 계약한 집인데...
거짓말처럼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쩐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올바르게 찾아 돌아온 것만 같아 기뻤다.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에 아랑곳없이 삶은 도도하게 흘러가버린다.
청춘도 사랑도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 지나가버림 속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어딘가 계절 같은 것이어서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지만 다시 되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사랑도 그때 내가 사랑했던 그 여인은 아니지만 그의 느낌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청춘도 그때의 그 푸르던 젊은은 아니지만 또 다른 모습의 생기를 지니고...
지나쳐버린 장소도 언젠가는 다시 그곳에 돌아오게끔 되어 있다.
인간은 어차피 자전하는 지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머무르지 말자고 늘 되뇌인다.
과거에 머물기보다 다시 돌아오는 순간에
내게 주어진 지금의 하루하루
가장 보통의 날들을 사랑하자고 다독인다.

때로 약해지고
때로 울적해지고
때로 죽고 싶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본다.
쥐어짜본다.

그것이 지구에 사는 생명이 지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가을이 오고 나는 끝도 없이 가라앉아버리겠지만...
그래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올 것이다.
힘차게 발을 구르고 손을 허우적거리며.
고통이여, 고독이여, 안녕!





2011. 9. 1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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