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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하고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자전거를 집 앞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틀 정도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안장이 내려가 있고 누군가 타고 다닌 흔적이 역력했다. 집 앞에는 조그만 학원이 있어 아마도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이 타고 다닌 모양이다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채 그대로 자전거를 두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전거는 항상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세밀하지 못한 아이임에 틀림없는 자전거 도둑은 늘 안장을 내려놓은 채로 올려놓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자전거를 즐겁게 타는 장면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지었다. 때로는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조금 떨어진 마트까지 내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는 장면도 떠올려 보았다. 역시 심장 어디쯤엔가 촛불이 켜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자전거를 동경하며 자랐다. 늘 갖고 싶었던 것이지만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가져보지 못했고, 심지어 자전거를 제대로 타 본 것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의 산악바이크 체험이 유일했다. 대학생이 되어서 큰맘을 먹고 큰 돈을 들여 자전거를 샀다. 파란색의 프레임을 가졌기에 '파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척 아꼈다. 허나 그런 마음과는 반대로 금세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 다음 번도 그 다음 번도 마찬가지였다. 파람이 3세까지 도둑 맞은 뒤로는 자전거에 대한 소유욕을 버렸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계속 자전거 정류장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도시와 떨어진 곳에 와 살게 되며 다시 자전거를 샀다. 이번에는 검은색 프레임이어서 '오바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살뜰히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도둑의 심리란 꽁꽁 묶어두고 감추어 두려할 수록 끝끝내 찾아내고 풀어내어 가져가기 마련이다. 오히려 드러내놓고 있을 때 도둑은 '아마도 주인이 가까운 곳에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섣불리 훔쳐갈 생각을 못하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자전거를 자물쇠도 없이 밖에 내어놓고 있었는데 어제 일이 생겼다.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가려고 자전거에 올랐는데 앞뒤 바퀴가 모두 펑크가 나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타고 험한 길을 가다가 그리 된 것이리라.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마음 편하게 자전거를 밖에 내어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에 돌아와 한껏 내려가 있는 안장을 보며 흐뭇한 상상을 하는 기회를 더 이상 갖지 못할 것 같아서다. 자전거를 자물쇠로 꽁꽁 걸어잠그고 내 방 문 앞에다가 세워두면 누구도 자전거 바퀴를 펑크 내고 무심히 던져놓는 일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학원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잠시 짬을 내어 내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즐기거나, 긴급한 사정이 생긴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마트로 질주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구멍난 자전거 바퀴야 다시 바람을 불어넣고 구멍난 부분을 봉하면 그만이지만... 구멍난 마음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 번 더 나는 자전거를 밖에 내어놓을 참이다. 물론 자물쇠따위는 걸지 않고 말이다. 자전거 바퀴를 펑크낸 아이는 아마도 많이 당황했겠지. 동네에 자전거 가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수리를 마치고 가져다 놓을 자신도 없었겠지. 아마도 아마도 말이다. 그러니 그걸로 됐다. 따뜻한 평화를 유지하는 힘은 '내려놓음'이다. 내가 내려놓으면 누군가 그만큼 돌려받는다. 나에겐 자전거 바퀴 구멍을 고칠만큼의 경제적 여유는 있으니까. 그 댓가는 행복한 상상으로 돌려받겠다. 어딘가에서 불안한 오후를 보내고 있을지 모를 자전거 도둑도 그 마음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당신이 자전거를 여기에 돌려 놓아 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아호.
2011. 2. 27. 멀고느린구름.
* 아호(Aho) :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로 '자연의 뜻에 따라' 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의 '아멘'처럼 성스러운 기도 등에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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