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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22살 무렵부터 '강의'라는 것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9년이라는 세월 어물쩍 흘러버려서 요즘에는 예비 강사(?)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교수법'을 가르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교무실 문 앞에서 대체 어느 타이밍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며 4시간을 문 앞에 버티고 서있었던 나였다. -당연히 모두들 내가 벌 서고 있는 줄 알았다고 회고할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적에는 수업 시간에 내가 교사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때에는 곳곳에서 흠칫 놀라거나,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모두들 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가 그제서야 "아, 말을 할 수도 있었지."라고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는 제법 놀던 아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하는 걸 귀찮아하기 시작했고, 최소한의 의사 표현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군가와 말을 섞어야 하는 일은 곤욕 중의 곤욕이어서, 담임교사가 교무실에 가서 분필 같은 것을 얻어 오라던가 하는 심부름을 시킬 때에는 당장 퇴교를 다짐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청중들 앞에서 쉴새없이 떠들어야 하는 '강의'를 9년 동안이나 지속해왔다고 하면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라거나 녹취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할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번거로우니 양심에 손을 얹고 나는 분명히 강의를 해왔다고 고백한다.
나의 첫 강의는 공교롭게도 나의 전공-국어국문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자로봇공학의 '퍼지이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의 '퍼지이론' 발표를 듣기 위해 눈을 빛내고 있는 20대 초반의 싱싱한 젊음들 앞에 서기 위해 나는 거금을 들여 우황청심환을 사먹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서 발표 내내 식은땀만 평소에 3배 가량 흘리게 되었다. '어쨌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게 어쨋뜬 나는 강의를 마쳤고 의외로 학생들은 내 강의를 호평했다. 당시 나는 도올 선생의 강의 스타일에 조금 경도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최신 트랜드(?)를 따르다 보니 그런 좋은 결과를 나았다고 아직도 판단하고 있다.
처음의 성취를 바탕으로 이후 나는 엄청난 대형강의들을 줄지어 했는데 대개 다 내 전공과 관련이 없었다. 가령 '공자의 관점으로 보는 동아시아의 역사'라던가, '인신과 기신, 21세기의 새로운 신학', '여신이란 무엇인가', '불교와 마음', '한국 기독교에 복음은 있는가', '페미니즘, 인류의 균형추', '아메리카 원주민과 오래된 미래' 등등 주로 철학이나 종교학, 사회 정치학 분야의 강의를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오래된 미래'라는 주제로 펼친 강의다. 내가 스물 네살 때 고려대학교 홍보관 1층에서 진행된 강의로 약 200명 가량의 대학생을 상대로 3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나는 그 강의에서 그동안 내가 연구해오고 배워왔던 모든 것을 쏟아내며 열정적으로 지구와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때의 강의를 녹화나 녹취해두지 않은 것이 참으로 원통할 뿐이다. 내 사상이랄 것이 있다면 그 강의를 통해 다 제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강의에는 내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담겨 있었다. 나는 요즘에도 종종 그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대학생들의 눈빛을 떠올리며 감격하곤 한다. 아무리 개똥같은 강의를 마친 후에라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 그래도 내겐 레전드가 있어."라는 안도감이 든다.
대학교를 벗어나서도 나는 어쩌다보니 일반인들을 상대로 '불교의 유식사상'이라던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라던가 하는 것을 강연할 기회가 많아서 수십 차례 그런 강연들을 진행했다. 이후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좀 더 폭을 넓혀 '록의 역사'라던지, '재즈를 사랑하나요', '나는 이렇게 커피를 배웠다' 같은 강의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강연대에 서며 우황청심환을 잘못 복용하는 일따위는 저지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교수법에도 관록이 붙어서 내가 강의를 시작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집중하여 잘 들어줄 정도는 된다. 물론 2-3명 가량은 반드시 졸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 여기고 크게 괘념치 않는다. 시중에는 효과적인 '교수법'에 대한 매뉴얼이 다수 출시가 되어 있다. 고작 9년을 가지고 건방을 떨며 이야기 하자면 역시 가장 좋은 교수법은 '강사의 열정' 이상이 없다. 강의라는 것도 결국 나와 당신이 만나는 행위다. 누구를 만나고 그와 대화를 할 때 가장 상대의 가슴을 끄는 것은 말하는 상대가 얼마나 '진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농담을 아무리 잘하는 이라해도 그 속에 상대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진정성이 없으면 이내 맥이 빠지고 만다. 강의 역시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주제에 나 자신이 열의도 애정도 없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내 나이 22살, '퍼지이론'을 처음 강의할 때 나는 30분간의 강의를 위해 '퍼지이론'에 관한 10권의 책과 20권의 논문을 읽었고, 녹음테이프를 이용하여 5시간 가량 미리 강의 리허설을 했었다.-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 모쪼록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는 말아달라. - 나는 청중들을 상대로 '퍼지이론'이야말로 인류를 구할 최고의 인공지능 이론이며 이 이론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류의 어떤 발전도 없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강의를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 강의의 내용을 기억하며 언제라도 1시간 이상 '퍼지이론'에 대해 떠들 수 있다. -그렇다고 직접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
최근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언제까지 '강의'라는 활동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강의는 물론 무척 재미난 활동이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을 바탕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거기다 '교육'이라는 요소까지 함께 접합된다면 매우 커다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역시 글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한 주간 계속 진행된 '교수법' 특강 때문에 에너지가 바닥 나 소설 연재를 제대로 못했던 것처럼. - 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지난 주에 썼던 분량과 다를게 없다는 것을 발견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훌륭하시다. -
좋은 강의를 듣고 나면 일주일이 가뿐하다. 마치 그 강의를 진행한 강사가 내 등을 힘껏 밀어주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의를 계속할지 알 수는 없지만, 이왕에 하는 거라면 좋은 강의를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강의란 강사 자신을 향상 시키는 강의다. 자신의 강의가 자기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거라면 타인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양심의 범죄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해로운 강의는 하지 않았다. 내 양심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전달하지 않았다. 가수는 자기가 부르는 노래대로 삶이 진행되고, 강사는 자기가 강의하는 대로 삶이 변화한다.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강단에 서 있는 모두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당신의 강의로 당신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까.
2011. 1.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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