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문/에세이

목마른 이가 우물을

멀고느린구름 2020. 1. 15. 06:45

"목마른 이가 우물을 찾는다." 라는 표현은 얼마나 낡은 표현인가. '우물'이라는 사물이 인간의 곁에 있었던 시대는 이미 20세기의 전반부에 끝나버렸고, 적어도 인류의 절반 이상은 우물을 찾아나서야 할 만큼 목이 마를 일도 없다. 그럼에도 삶과 아주 멀어져버린 이 표현은 여전히 살아남아 기어이 무명 문필가의 제목으로 등장하고야 말았다. 

 

굳이 이런 것을 준엄하게 꾸짖으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다. 그저 연초에 트위터에 복귀해 틈틈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더니, 역시나 에세이를 쓸 욕망이 적어지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적당히 목이 말라야 세상에 없는 우물이라도 찾아나서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 싶다. 그래도 반년 가까이 휴식을 한 덕에 좀 서먹하기도 하여 예전에 비해서는 트윗량이 크게 줄었다고 자부(?)한다. (어디선가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었군." 이라며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트친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춥다는 이유로 집필실을 가지 않다 보니 - 지금은 따뜻한 주방 - 소설도 쓰지 않고 있다. 벌써 한 달 째 휴식이다.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마음이 있는데, 이래도 되지 않느냐는 마음도 있다. 요는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다.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한 쪽은 경제적 폭망을 불러일으킨 애증의 판타지 장편소설 <신단수 이야기>를 리부트하여 브릿G 사이트에 연재하는 쪽. 다른 한 쪽은 6년 전 한 발을 내딛었다가 여행서를 쓰는 일에 순번이 밀려버린 장편소설 <거위들>을 비공개로 묵묵히 써가는 쪽이다. 비공개로 글을 쓰는 이유는 역시나 어딘가 공모전에 내보기 위해서인데... 1-2년이 걸릴 장편을 '비공개'로 쓰는 건 정말 재미 없는 일이라서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집필 욕망 자체로 보자면 <신단수 이야기> 보다는 <거위들> 쪽이 더 크고 깊다. 

 

인생이란 바로 다음 장을 알 수 없어서 내 예상대로만 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쪽을 걸어가느냐에 따라 내 삶이 크게 뒤바뀔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세월이 쌓인 만큼 한 수 한 수를 결정하는 게 점점 더 어렵다. 20대 무렵에는 참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야! 하며 멋대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집필행보나 광폭 직업체험에 후회는 전혀 없다. 그때는 그렇게 살아봐야 하는 시기니까. 하지만 한국 사회가 그리 너그러운 곳이 아니기에 앞으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지를 신중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1월에 내려야 할 선택은 비단 글쓰기의 문제뿐은 아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고, 과거는 지나갔다. 

모든 존재는 오직 지금 여기에서 두리번거리고 머뭇거린다.

그리하여 미래도 과거도 잃고 만다.

후회도 두려움도 내려놓고 어디로든 한 발자국."

 

어제 출근길에 문득 떠올라 트위터에 썼던 문장을 여기에도 다시 써본다. 내 안에 일어나는 이 오래된 갈증은 나를 어느 우물로 이끌어 갈까? 부디 맑은 물과 다정한 동반자가 있는 곳이기를. 

 

 

2020. 1. 15. 멀고느린구름.

 

'산문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절할 수 없는 휴가  (0) 2020.02.27
눈이 내리는데  (0) 2020.02.16
플랜 B의 삶  (0) 2020.01.03
무제 2019  (0) 2019.12.31
귀소본능  (0) 2019.12.29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