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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무제 2019

멀고느린구름 2019. 12. 31. 22:09

 

"멀고, 느린, 구름이란 건 어떻게 생긴 구름인가요?"

 

멀고느린구름이란 이름을 십수 년간 써왔지만 그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글쎄... 사실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날 처음 멀고느린구름의 모습을 상상했다.

노을 지는 저녁의 새털구름,

봄바람 속에 떠가는 양떼구름,

태풍이 지난 후의 뭉게구름,

높은 가을 하늘 속의 실구름...

멀고느린구름은 그 모두이면서 동시에 어느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이 가득하지만

나는 나 자신만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래, 나는 이렇게 해야 해, 나는 이걸 원해. 

별 망설임 없이 나를 주장해왔다.

 

허나 지나고 보면 모두가 교만에 불과했다.

나는 자화상은 잘 그리는지 몰라도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방법은 그다지 알지 못했다.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나를 내세움으로써 종종 행복에서 스스로 일탈해왔다.

 

겸허해지고 귀를 기울이고

교만과 아집과 이기심을 더 많이 버려야지.

말과 글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아야지.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면

그때는 멀고느린구름의 생김새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될까.

언젠가... 적어도 10년 뒤의 나는 부디

누군가 바라보았을 때 그리우면서도

따스하게 미소가 번지는, 그런 구름이었으면 좋겠다.

 

안녕히. 2010-2019. 

 

2019. 12. 3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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