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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神이란 무엇인가
(중국의 신화를 중심으로)
글쓴이: 멀고느린구름
patr-0. 여신과의 만남.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여인과 이별을 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군대로 도피해가고, 서울 하늘 아래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었다. 바람에 낙엽이 뒹굴 듯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밥을 먹고 그렇게 그냥 세월만 흘려보내던 때였다. 어느 날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내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맞이한 대학 2학년생의 그 눈물은 마치 죽음을 앞둔 90 노인의 회한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변해야지! 이대로는 안돼! 그래 다시 부활하자! 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쳤던 것은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동안 문학을 한답시고 소설책만 읽었던 나는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도 무식하게 살았구나. 이런 것도 알지 못하면서 예술가랍시고 폼을 잡고 다녔구나! 하고 깊이깊이 반성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깊이 탐구했던 것은 동양철학과 인디언 문화였다. 내가 사는 이 동양의 뿌리와 또 어느 점쟁이가 말했던 나의 전생(=인디언)의 뿌리를 캐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나는 논어니 도덕경이니 장자니 주역이니 하는 책들 속의 새까만 한자들과 싸우고, 시중에 나온 인디언 관련 저서는 모두 사들여서 읽고, 시중에 유통되던 스무 권 정도의 책으로는 부족해 직접 미국의 원서를 수입해서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어느 새 3년째. 지금 나의 관심은 어느 덧 신학으로 옮아와 있다.
신학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디언 때문이었다. 인디언을 멸망시킨 것은 프론티어 정신을 앞잡이로 침투해온 유럽의 청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잔혹하게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정신을 말살하려 했다. 나는 도대체 그 썩어빠진 청교도들이 외쳤던 신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분노에 차서 구약과 신약을 읽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청교도들이 믿었던 신과는 전혀 다른 신이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신에 대해 어리둥절했다. 아니 성경의 신은 전혀 청교도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 신의 정체를 정의할 수 없었다.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은 결코 구약의 신 야훼가 아니었으며, 또한 아버지도 아니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오히려 인디언들의 위대한 영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여성신학자 현경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보낸 1)‘미래에서 온 편지’ 와 2)‘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라는 복음을 전해 듣고 나는 깨달았다.
‘성경에서 만났던 것은 바로 여신의 이미지였구나.’
그렇게 나는 여신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페미니즘과의 우정도 함께 싹텄다. 본 보고서는 위와 같은 나의 오랜 체험과 탐구의 과정물이다.(결과물이 아님)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이 의문들을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나가려고 한다. 지금의 나는 내가 성경에서 만난 것이 사실 여신도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3)氣神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이 상상하지 않고 실제적 체험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신이라는 존재는 결국 氣神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많은 것들에 대해서 명확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 보고서가 내가 한 시절에 무엇을 탐구하고 있었고, 또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가 하는 과정의 기록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본 보고서는 수업시간에 발표한 순서를 따라 구성이 되어 있다.
우선, 신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막문명과 농경문명에서 신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갑골문에 나타난 여성과 남성에 대한 것도 잠시 알아볼 것이다.
셋째는 모계사회와 여신이란 주제로 중국의 모계사회에 대한 고찰과 그 속에서 여신이 어떻게 발생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중국의 신화에 나타난 여러 여신들에 대한 소개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종교와 여성이라는 주제의 논설로 보고서를 맺음 할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1. 인간은 어떻게 신을 생각할까?
인류와 신은 떼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신과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신이 없는 인간, 인간이 없는 신’ 이 모두 의미가 없다. 흔히들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규정할 때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구분을 짓고는 한다.
‘신이 있냐? 신이 없냐?’
사실 이 의문은 질문부터가 잘못되어 있다. 이미 신이라는 개념을 상정해놓고는 그 신이 있냐 없냐 라고 묻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신은 있어도 없을 수 있고, 없어도 있을 수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지금 친구한테 너 혹시 ‘디카 있냐, 디카 없냐?’ 라고 묻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내가 디카(=디지털카메라)가 있냐 없냐라고 묻는 물음 속에는 이미 디카라는 실체가 포함되어 있다. 있다고 가정한 상태의 질문인 것이다. 이 경우 친구가 ‘디카라는 건 없어’ 라고 해봤자. 시중에는 이미 수많은 종류의 디카가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유신론 무신론의 논쟁은 이 디카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논쟁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 인류의 삶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정말로 쓸데없는 짓거리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지구에서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의 의식 속에 항상 신이라는 것은 존재해왔다. 전 세계의 어느 문화를 들여다봐도 그 속에 신이 빠져 있는 경우는 없다. (유교에는 신이 없다고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허나 유교에도 명백히 신이 있다. 4)공자는 심심하면 신을 찾는 인간이었다.) 다만 인간이 신을 생각하는 방식 혹은 그 신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나는 그것을 인신과 기신으로 나누어봤다.
우선 人神이란, 말 그대로 인간의 형태를 가진 신, 혹은 인격을 가진 신을 뜻한다. 이것은유대인의 야훼라던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리스로마의 여러신들, 그리고 우리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 환웅 같은 것도 모두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또한 반인반수의 형태를 하고 있더라도, 혹은 그냥 동물이나 식물의 형태를 지니더라도 그것이 어떤 인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신으로 포함할 수 있다. 인신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적으로 성별의 구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성별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닮은 신은 성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탓에 가부장제 권력이 득세를 해온 지난 몇 천년간 신은 당연히 남성신으로 여겨져 왔다. 인신은 쉽게 말하면 지구의 대통령 같은 것으로 그는 만물의 리더격인 존재로
하루 종일 바쁘게 인간의 삶을 열심히 관찰하고, 잘한 건 칭찬하고, 못한 것은 벌을 주는 일을 한다. 신이라는 것이 어떠한 절대적 존재이면서도 인성을 가지고 또 신의 소임까지 다하려면 그(여기서 ‘그’ 그남과 그녀를 포괄하는 인칭으로 사용함)는 결코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각 민족 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신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때문에 인간들은 싸워 왔다. 기독교는 한 발 더 나아가 신은 유일신밖에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인성을 지닌 신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쉽게 생각해 지구는 태양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 중 하나이고, 또 그 태양계는 은하의 수억 개의 다른 행성계 중에 하나일 뿐이고, 또 은하는 다시 수억 개의 은하중 하나일 뿐이고, 그 은하가 모인 은하단도 또 수억 개 된다. 이 수억 개의 수억 개의 수억 개 중에 살고 있는 수억 명의 인간을 단 하나의 인간이 보살피고 계신다? 나는 도무지 그런 뻥은 믿지를 못하겠다. 최소한 신에게 인성을 부여한다면, 가장 최소 단위로 신은 각 국가 마다 서로 다른 이름의 신이 존재해야만 하며, 또 그 성비 또한 짝을 맞추어 줘야 할 것이다. 인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주제만으로도 따로 보고서를 써야할 정도이니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다음으로 氣神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기신이라는 개념은 많은 이들에게 상당히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생소하지 않고, 오히려 인신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기본적인 신학의 개념으로 기신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역시 동양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알타이 어족 계열이다. 즉 시베리아에서 발현해서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 그리고 몽고와 아메리카까지 진출한 머리 색깔이 까맣고 눈동자가 까맣거나 갈색인 황인종을 말한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기신론적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들은 분명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 등과는 전혀 다른 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선 중국의 경우를 보면 전통적으로 신이라는 개념은 크게 성하지 않았고, 보통 5)天이라던가, 道라는 말로서 표현되어져 왔다. 이 하늘이나 길이라는 말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같은 인성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 우선 기본적으로 하늘이나 길에는 그 고유한 이름이 없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이고 우리가 내려다보는 길인 것이다. 그 이상의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신을 칭하는 말인 ‘위대한 신비(The Great Spirit)’ 라는 말과 맥락이 같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보편적인 어떠한 원리로서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하늘, 길, 위대한 신비는 이 세계를 작동시키고, 혹은 바르게 다듬는 어떠한 보편적 원리, 혹은 섭리를 의미한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정확하게 ‘과학의 법칙’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것을 흔히 신에 대한 반동으로 여기고, 과학자들은 다들 무신론자인 것으로 오해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이야 말로 신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이 과학이야 말로 인류 최초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모든 과학자들과 과학을 신뢰하는 모든 인간들은 이 氣神의 신봉자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앞서서 이 지구에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은 없다! 라고 기세 좋게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이야 말로 또 다른 신에 대한 열렬한 믿음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에 대해서 어떠한 인성적인 것을 빼버린다면, 우리는 이 우주를 움직이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어떠한 원리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이 우주의 원리로서의 신을 경험적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서구문명의 과학이고, 그것을 어떠한 도덕적 체계나 정신적 이념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 바로 동양의 유가, 도가, 그리고 인디언들의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무렵 이러한 氣神에 대한 철저한 논리를 폈던 대사상가가 있다. 그가 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6)‘기학’의 저자 최한기이다.)
이처럼 인류는 신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인신을 믿는 이와 기신을 믿는 이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두 신관에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양자는 같은 하나의 신관이다. 우리가 인신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의 세계에 존재하는 기가 인간의 변연계와 감응을 일으켜 나타난 현상이며, 기라는 것 또한 보다 인간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일부분 인성적 표피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술하기에는 갈 길이 바쁘니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다. 지금 ‘여신이란 무엇인가’ 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본 보고서에서 전제되고 있는 신은 기본적으로 인신의 범주에 해당함을 밝히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2. 사막과 황무지에서 태어난 남신, 비옥한 축복의 농토에서 태어난 여신.7)
인류 문명은 그 발상지의 기후조건 및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기계적으로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막문명-> 水神+地神 -> 天神
*옥토문명-> 地神+水神 -> 天神
사막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 등을 생각할 수 있고, 옥토문명(옥토는 비옥한 땅이라는 뜻. 즉 농사가 가능한 땅의 문명이라는 의미다.)은 중국, 유럽 등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사막문명의 여신으로는 8)이집트의 ‘누’, 수메르의 ‘티아맷’ 등을 들 수 있다. 옥토문명의 여신으로는 9)그리스 로마의 ‘가이아’, 중국의 ‘여와’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사막문명에서는 주로 물을 주관하는 여신이 그 기원이 되고, 옥토문명에서는 대지를 주관하는 여신이 그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막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 바로 물이고, 옥토문명에서 생명의 싹이 나오는 곳이 바로 대지였다는 것에서 그 연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두 문명의 신화에서 최초의 신은 모두 여신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시 고대사회가 모계사회였으며, 생명을 탄생시키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존재가 고대인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배가 어느 날부터 불러오다가 갑자기 거기서 자기를 닮은 생물체가 쑥 튀어나왔을 때 인류의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자!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바로 신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갑골문을 보면 이러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에 대한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갑골문에서 女라는 글자는 상형문자로서, 고층대의 문자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女자는 갑골문에서 아기를 낳고 있는 산모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에 비해 男자는 밭에서 쟁기를 들고 있다는 의미의 회의자로서 상형자 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대인들의 의식 체계 속에 남자라는 성이 크게 쓸모 있는 존재로 인식이 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성(=family name), 본성 등을 나타내는 姓이라는 말도 갑골문에는 여성이 새싹을 틔워내고 있는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여성은 고대인들에게 남성에 비해 존중받는 위치에 있었고, 그로 인해 초기의 신화전승에서는 모두 최초의 신이 여성으로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인류에게 모습을 나타낸 여신들은 서로 각자의 다른 속성들(水는 地를, 地는 水를.)을 포섭하며 발전해 나가다가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天의 출현, 남신의 출현이었다.
天의 남신은 유목생활을 하는 인류로부터 출현한 신의 형태이다. 유목생활은 기본적으로 양 같은 가축을 키움으로써 양식을 얻는다. 이 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자의 역할 필요하다. 이 목자에게는 양을 감시하고 지키는 것과 더불어 양을 유목하기 좋은 지역을 재빠르게 찾아내어 부족민들을 이주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리더십. 그러한 목자에는 후다닥 도망치는 양을 재빠르게 추격해서 잡을 수 있는 신체조건이 우세한 남성이 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것이 시대를 더해가며 점차 강화되어 강력한 남성, 강력한 남신의 출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목민은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유랑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는데, 그것은 결국 남의 영토라도 비옥한 땅은 힘으로 빼앗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한 일이 잦아지니 도덕적 명분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유대인들의 신 야훼가 등장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몽고계의 유목민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천의 神觀이 들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천의 신관은 유대인의 야훼와는 조금 달랐다.(그러나 그 하위문화는 같은 유목문화로서 유사하다.) 그러한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인해 정착생활을 하던 사막문명 및 황무지 문명, 그리고 옥토문명권의 평화롭던 여신의 문화는 쇠퇴하고, 기나긴 가부장 하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3. 중국의 모계사회와 여신.
중국의 고대가 모계사회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별로 이견이 없다. 10)대체로 모계사회였다고 추정되는 遠古사회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 등의 역사시기로 구분되며 원시 군집사회-> 혈연 가족공동체-> 모계씨족 공동체-> 부계씨족 공동체로의 변이가 일어난다고 본다. 모계사회는 시기적으로는 약 230만 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의 시기로 보고 있으며, 모계씨족 공동체가 쇄락기로 접어든 것은 1만 년 전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인류는 아주 처음에는 군혼을 통해서 아빠 엄마 누나 형 동생 언니 할 것 없이 성관계를 맺고 혈연 공동체를 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그러한 같은 혈연 끼리 후세를 출생하는 것이 좋지 않다(수명이 짧다)는 것을 인식하고, 점차 다른 혈연 부족과의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다른 혈연 부족과 관계를 맺으려니 자신의 출생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어머니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사는 모계씨족 공동체가 발생한 것이다. 11)실제로 중국에는 사람의 성에 女부수가 붙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 한다.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최소한 은대까지는 이러한 모계적 풍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것은 은대까지 할머니에 대한 별도의 제사를 모시는 ‘선비’제사의 풍습이 남아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유추해본 것이다. 이 선비제사는 은 왕조가 멸망하고, 주나라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12)선비제사는 완전한 모계전통이라기 보다는 부계의 풍습에 가까우나, 이러한 제사가 완전히 사라진 주 왕조에 비해서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한 층 앞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또한 춘추전국 시대에 형성된 문헌인 13)장자에도 ‘사람들은 어머니를 알고 아버지를 몰랐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문헌 외에도 유물의 발굴을 통해서도 중국의 모계사회는 그 베일을 한 꺼풀씩 벗고 있다. 14)1980년대에 발굴된 여신묘와 여신상의 발굴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겠다. 홍산문화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여신묘는 호로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발굴된 여신상들은 대부분 배가 부른 산모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호로모양의 여신묘는 중국의 원시사회의 문화현상 중 하나였던 ‘葫蘆文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학자에 따라 의견은 분분하지만 발굴된 여신상들은 고대에 일반적으로 여시조를 일컫던 말이 여와였음에 착안하여, 그러한 여신상들이 바로 여시조 여와의 상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견해로는 地母의 형상이라는 설, 火神, 農神, 山神의 형상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러한 여신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그들 나름의 신전형태의 묘를 가졌다는 것은 역시 중국의 고대사회가 모계사회였음을 입증 시켜준다.
이처럼 여러 문헌과 유적, 유물들을 통해 중국의 고대사회가 모계사회였음이 밝혀지고 있고, 또한 그러한 모계사회에서 여신이 숭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계사회에서는 생명의 본적지가 결국 어머니일 수밖에 없으며,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이면서 동시에 생명이 귀속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는 응당 신격화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회는 그러한 맥락에서 모계씨족 사회였던 동시에 여신을 숭배했던 사회였음이 분명하다. 이제 이러한 전반적인 중국의 역사적 바탕 위에서 생겨난 여신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하자.
4. 여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여신을 남신에 대한 상대어로서만 파악을 한다. 남신에 대한 여신. 그러니 신이라고만 말해버리면 그 속에 여신의 자리는 없거나 희미하다. 가부장제가 인류를 지배하면서부터는 2장에서 논의한 ‘天父神’만이 진정한 신으로서 지위를 누려왔다. 그에 반해 地母神으로서의 지위를 얻은 여신은 천부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을 지니고, 무슨 사이비 신인 것처럼 여겨지고, 여신을 믿는 이들은 사이비 광신도로서 단죄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사실 고대로 고대로 올라가면 호랑이가 담배 피려고 태어나기도 전에는 인류에게 신이란 것은 15)‘大母神’을 일컬었다. 바빌론 신화의 티아맷,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이아, 중국의 여와 등이 모두 이러한 대모신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16)대부분의 신화는 이러한 대모신들이 새로 출현한 천부신에게 살해당하거나 정권을 빼앗김으로써 출발하고 있다. 이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전이 과정이 신화적으로 기술된 것이다.
이제 본 보고서에서는 중국신화에 나타나는 大母神 ‘여와’ 로부터 출발하여 각각의 역할과 지위를 가지고 분화된 여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大母神(the Great Mother)
17)대모신의 개념 범주에는 대체로 창세신과 시조모신등을 넣을 수 있겠다. 중국의 신화에는 여신으로서는 이 범주에 드는 것은 여와가 유일하다. 여와는 창세신인 동시에 인류를 최초로 만든 시조모신으로서 중국신화에 등장하고 있다. 동한 시대의 문서인<風俗通義>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속설에 따르면 천지가 개벽할 때 아직 사람이 없어서 여와가 18)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다가 다시 만들 여력이 없자 노끈을 진흙 속에 넣었다가 휘둘러서 사람을 만들었다. 그래서 부귀한 사람은 황토로 만든 사람이고 빈천한 사람은 끈을 휘둘러서 만든 사람이다.
이처럼 여와가 인간을 창조한 시조모신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풍속통의>의 기록은 ‘노끈’ 이라는 도구의 등장과, 부귀한 이와 빈천한 이의 계급적 분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아 비교적 후대의 사고가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이른 기록으로는 <산해경>과 <초사>의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민간신화 전승 속에서도 여와는 인류창조의 신으로 나타난다.
여와는 옛날의 신녀이자 제왕이다.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했으며 하루에도 70번 변한다. 그 배가 이 신들로 변하였다.
열 명의 신이 있는데 여와장이라고 한다. (여와는 이렇게) 신으로 변하여
-산해경-
여와가 세상 만물을 화육하는 본체라면, 그녀는 또 누가 만들었을까
-초사-
반고가 천지를 개벽한 이후로 여와는 세상이 너무나 적막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태양과 달별이 모두 둥그니 인간도 둥글게 만들고자 결심하였다. 그녀는 우선 황토와 물로 둥근 사람을 하나 빚었는데 찬물과 찬 흙으로 빚었기 때문에 생기가 없었다. 여와는 그래서 불로써 물과 흙을 뜨겁게 데워 다시 빚으니 인간은 곧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온도가 너무 높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여와는 다시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이 만들어지자마자 자신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녀는 사람을 오늘날처럼 사지가 분명하고 오관이 단정하게 만들었다. 인간들은 인간의 조상이 猿人이라고 곧잘 말하는데 이 원인은 圓人에서 나왔다고 한다.
-19)人最早是圓的-
이와 같은 기록들을 통해 여와가 당대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인류의 시조모신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민간의 전승신화에서는 반고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세계를 창세한 거인 신인 반고이다. 중국의 창세에 관한 생각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20)혼돈으로부터 음양이 나타나고 이것이 합쳐져서 만물이 생해졌다는 관념적인 생각이고, 나머지가 바로 반고의 창세신화이다.
혼돈의 얘기를 시작하자면 노자의 도덕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리되면 또 얘기가 본류를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럼 반고의 신화를 살펴보자.
하늘과 땅이 아직 계란처럼 혼돈의 상태에 있었고 그 안에서 반고가 생겨나 18000년이 지나 천지가 개벽되었는데 양기와 맑은 기운이 하늘이 되었고 음기와 탁한 기운은 땅이 되었다. 반고가 그 안에서 하루에 9번 변하며 하늘에서는 신이 되고 땅에서는 성인이 되었다.
-三五歷記-
최초에 반고가 태어나 죽게 되자 그의 몸이 화생하였다. 그의 숨은 바람과 구름으로, 그의 목소리는 천둥으로, 그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각각 해와 달로, 그의 사지오체는 땅의 사극과 오악으로, 그의 피는 강으로, 그의 근육과 혈관은 지층으로, 그의 살은 토양으로, 그의 머리와 수염을 별자리로, 그의 피부와 몸의 털은 식물과 나무로, 그의 치아와 뼈는 금속과 돌로, 그의 골수는 금과 보석으로, 그의 땀과 비로 화하였다. 그리고 그의 몸의 벌레들은 바람의 감응에 의해 인간으로 변했다.
-五運歷年記-
이처럼 반고는 창세의 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아래쪽의 기록에는 창조신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허나 이들 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이 짙게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이 반고라는 신화가 상당부분 후대에 각색이 되었거나, 또는 여와의 신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대에 쓰여 졌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반고의 육체가 분열해서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21)북구유럽의 신화에서 거인 이미르가 죽으면서 세계가 탄생된다는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이와 같은 정황들을 보았을 때 반고의 창세 신화는 여와의 창조신화 이후에 만들어 졌던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즉 다시 말해 원래는 여와가 창세의 역할도 맡았으나, 후대에 여와가 창조신의 지위를 복희에게 빼앗긴 것처럼 창세신의 지위를 반고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문헌 외에도 고고학적 유물에서도 반고를 기리는 것이 거의 전무한데 반해, 고대시대의 여와를 형상화한 유물들은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선적으로 중국의 신화에서 ‘여와’ 가 창조신임과 동시에 창세신으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추앙 받아왔다는 결론을 내려볼 수 있겠다.
(2)自然神.
자연신으로는 여러 신이 존재하지만 본 보고서에서는 간략하게 日神과 月神, 雨神 그리고 地神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1)日神
태양은 지구를 유지시키는 모든 에너지의 고향으로, 인류문명의 보편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 태양은 보통 인류문명에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고, 여성은 달에 비유되어 왔다. 그런데 22)중국에는 독특하게도 이 태양의 신으로 羲和라는 여신이 있다.
동해의 밖, 감수의 사이에 희화국이 있다. 희화라는 여자가 있어 지금 감천에서 해를 목욕시키고 있다. 희화는 제후의 아내로 열 개의 해를 낳았다.
-산해경-
이처럼 산해경에서 희화는 태양을 관리하고, 생산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또 독특하게 해와 달을 모두 관리하는 여신도 <산해경>속에 소개되고 있다.
女和月母國이 있다. 완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북방을 완이라 하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은 염이라고 한다. 그녀는 동북쪽 모퉁이에 살면서 해와 달을 멈추게 하고 서로 섞여서 뜨고 지지 않도록 하며 그 길고 짧음도 다스린다.
비록 완의 성별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화월모국이라는 단서를 통해서 완의 성별이 여성일 가능성이 더 높음을 가정해볼 수 있겠다.
종래에는 태양에 여성의 신격을 부여하는 것이 무슨 큰 금기처럼 여겨지거나, 혹은 좀 배우지 못한 무식한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점차 23)잃어버린 여성의 ‘태양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그와 함께 달의 신으로서의 남성의 역할도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시 인간이라는 것은 음과 양이 함께 구비된 존재로서 문화적 학습에 의해 각자 속에 있는 고유의 본성 중 한 쪽을 지나치게 억누르며 살아온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인간 본연의 불균형이 균형을 회복할 때 이 지구의 균형 또한 근원적으로 회복되리라 생각한다.
2)月神
어떤 여자가 지금 달을 씻기고 있다. 제후의 아내인 상희가 달을 열두 개 낳아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것을 씻겼다.
-산해경-
역시 산해경의 기록을 통해서 달을 주관하는 여신으로서의 상희라는 인물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달을 주관하는 일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여신이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달의 신 ‘아르테미스도’ 여신이었고,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 역시 달을 주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 바빌론의 ‘이슈타르’ 또한 가장 오래된 月母神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달의 담당 층에 여신이 포진하고 있는 것은 달의 변화하고, 생성하는 속성과 그 陰적인 특성 때문이다.
3)雨神
고대 모계사회에서는 대개 농경을 위주로 하여 삶을 이어갔다. 따라서 땅(地)과 더불어 물(水)의 존재가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물 중에서도 단연 비(雨)가 중요시 되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고대사회에서 기우제를 지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고대도 마찬가지로 기우제가 행해졌으며, 기우제에는 특히 女巫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모계사회와 부계사회 초기에는 여무가 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기록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무가 주도하는 기우제는 춘추시대에 가면, 여무를 산 제물로 바치는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되게 된다. 비록 후대에는 여성과 비에 대한 관계가 이처럼 많이 변질이 되었지만, 고대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해경에는 역시 황제여발이라는 여신이 비를 다스리는 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있어 이름을 황제여발이라고 한다. 24)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가 이에 응용으로 하여금 배주야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용이 물을 모아 둔 것을 치우가 풍백과 운사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로 거침없이 쏟아지게 하였다. 황제가 이에 천녀인 발을 내려 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발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녀가 머무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숙균이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후에 그녀를 적수의 북쪽에 두어 살게 하였고 숙균은 그리하여 밭농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발이 때때로 그곳을 빠져 나오면 그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은 “신이여!(적수의)북쪽으로 돌아가소서” 라고 명령하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우선 물길을 깨끗하게 하고 크고 작은 도랑을 터서 통하게 해놓았다.
-산해경-
이와 같은 산해경의 기록을 보면 ‘황제여발’이 황제를 죽이려는 치우를 제거하고, 폭풍우도 멈춘 혁혁한 공을 세운 신임에도 불구하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즉 비를 다스리는 여신의 지위에서 가뭄을 조장하는 악귀쯤으로 몰락해버린 것이다. 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비논리적인 전개를 통해 그러한 몰락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후대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전이과정에서 신화의 내용이 변질된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더 확정적인 단서로 여신인 황제여발이 쫓겨난 자리를 남신인 숙균이 차지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여->남’ 으로의 전형적인 권력변이의 형태이다. 이러한 변이의 형태는 뒤에서 다른 여신들의 변이와 함께 다루기로 하겠다.
4)地神
땅은 만물이 생성하고 자라나는 터전으로, 고대 농경 인류의 전폭적인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이 땅의 속성을 지닌 대지의 어머니로서의 여신은 그들에게는 25)‘핑클’ 같은 아이돌이었다. 이러한 땅의 속성을 지니는 여신은 세계적으로도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가이아’와 ‘데메테르’, 인도의 ‘데비’, 26)유대교의 ‘소피아’, 아메리카 원주민의 ‘어머니 대지’ 등을 들 수 있겠다. 중국의 여신으로는 역시 흙으로 사람을 빚었던 여와가 지모신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산해경에 등장하는 ‘후토’ 라는 신도 지모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학계에서는 이 후토의 성별에 대해 이견이 분분한 모양인데, 27)송정화 역시 언급한 논문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후토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쪽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고대사회에서 땅의 속성을 갖는 신은 대부분이 여신이었다는 점을 볼 때, 후토가 여신을 가능성이 남신일 가능성 보다 훨씬 높지 않는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 地神이라는 개념은 그 유명한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사용한 개념이기도 하다. 니체는 위의 책에서 자신의 최고 유행어인 “신은 죽었다!” 라는 선언 뒤에 땅의 신의 부활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천부신의 죽음을 뜻하고, 천부신의 죽음이라는 것은 곧 로고스, 이데아의 종말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죽음 뒤의 새로운 부활을 땅의 신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 땅의 신이라는 것은 내가 앞서 말한 氣神적인 존재이고, 물리학적인 세계관 속의 신이다. 즉 니체는 사변적인 이성의 죽음을 선언하고, 과학적인 이성의 회복을 알린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니체의 사상에 일정부분 동조한다. 그러나 하늘을 배제한 땅만의 신은 또한 문제가 된다. 인격을 거세한 기적인 형태의 신이 문제가 되듯이. 나는 궁극적으로 이 양자가 서로 조화되어 그 때와 상황에 따라 각각의 형태가 요청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 내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젠더의 차원에서 인류는 보다 균형이 잡힌 양성적 인간이 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균형이 인류 전체의 균형, 지구 전체의 균형을 이루는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남자는 보다 여성적으로 될 필요가 있고, 여성은 보다 남성적인 성향을 가질 필요가 있다. 허나 역시 과유불급! 지나치지는 말아야겠다.
여기까지로 여신에 대한 소개는 이만 접을까 한다. 중매신으로서의 역할이라던지, 음악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여신들이 더 있지만 대부분 여와가 중복해서 맡고 있다는 것만 알려둔다. 자세한 사항은 송정화씨의 논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5. 종교와 여성.
지금까지 중국신화에 나타난 여신을 중심으로 해서 비교문화적인 입장에서 여신에 대한 내용을 훑어보았다. 4장을 통해 거창한 여신들을 많이 소개했지만, 이들은 뒤에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대표적으로 여와는 반고에게 창세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후에는 복희에게 창조신의 지위마저 빼앗긴다. 거기에 더해서 나중에는 신으로서의 위치도 희미해져, 남신의 현명한 아내 정도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여신의 몰락은 황제여발의 예에서도 나타나며, 유대의 소피아라던가, 그리스로마의 가이아, 이집트의 이시스 등이 모두 남신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그다지 비중이 없는 위치로 퇴보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화의 변천 과정은 마치 여성의 역사를 그대로 보고 있는 듯 하다. 반만년 가부장제의 그늘 속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은 여성의 역사를 생각하면 당장 성전환을 해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물리적 성(sex)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성(gender)의 문제와 더 관련이 깊음을 알기에 일단 참는다.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려면 또 기나긴 레포트를 한 편 더 써야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은 종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사고체계에서는 과학도 일종의 氣神을 믿는 종교다.) 즉 종교는 세상을 향해 나 있는 인간의 마음의 창이다. 그 마음이 파란색이냐 빨간색이냐, 노란색이냐는 어쩌면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무엇이 진리냐? 라는 문제와도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대한민국 땅에서 또 온 세계에서 창문은 무슨 색깔이다 라고 열심히 세일즈를 펼치고 있는 것이겠지. 허나 색깔이란 것은 결국 빛이 사물에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오는 시각정보로, 대상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 중의 일부일 뿐이다. 김치의 색깔이 좀 다르다고 해서 김치의 맛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파랑색 김치는 왠지 맛이 없을 것 같지만.) 달이 붉은 색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태양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세계를 보는 창의 색깔은 저마다 다르다. 어느 색깔도 세계에 대한 정답이 아니다. 그것이 다원주의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는 평화의 길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길게 뜬금없는 색깔론을 얘기하는 것은 이 인류의 종교가 그동안 여성에게만 편협하게 끼어왔던 특제 선글라스를 벗을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모든 인간은 파란색이다! 라고 외치는 종교도 속으로는 아니 여성은 빨간색이지! 저 빨갱이! 라고 음흉한 이중노선을 보여 왔던 것이다. 종교가 진정으로 구원을 말하려면 여성부터 구원하라! 라고 나는 외치겠다. 이 땅의 종교는 지나치게 여성을 억압해 왔고, 그 종교의 뒤틀린 창으로부터 생겨난 가부장적 세계관이 또 다시 여성을 억눌러 왔다. 종교가 여성을 억압하는 한 진정한 여성의 해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지구의 여성 남성 패미니스트들이여, 야훼가 아닌 소피아를, 제우스가 아닌 가이아를, 복희가 아닌 여와를 신으로 모셔라. 여성적인 것,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부드러운 것, 평화로운 것! 그것들을 가꾸어낸 여신들을 숭배하라. 남신 야훼의 질투 일랑 툴툴 무시해버리고 소피아의 지혜를 회복하자. 그리고 지구를 살리는 살림살이의 달인, 28)살림이스트가 되자!
1)현경<미래에서 온 편지>(열림원)
2)현경<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열림원)
3)‘氣神’ 이란 말은 내가 만든 말이다. 세상에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격적인 신인 人神과 氣적인 신인 氣神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고에서 상술하겠다.
4)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檮也.”-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論語. 八佾 第三) *공자가 언급하는 하늘이란 기독교나 각종 민족신화에 나오는 인격적인 신과 다른 맥락이다. 그것은 나의 氣神적 개념에 가깝다.
5) 공자계열-天, 노장계열-道.
6) 최한기 저. 손병욱 역주. 도올 서문<氣學-19세기 한 조선인의 우주론>(통나무)
7) 2장의 내용은 도올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77p~210p 사이의 논의를 기본적으로 참고하였다. 도올의 경우 중국문명을 기본적으로 농경문명으로 보고 있으나, 나는 중국문명은 몽고계열의 유목문명과 농경문명이 융합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좀 더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8)다카히라 나루미<여신>(들녘). ‘누’와 ‘티아맷’은 모두 바다와 강을 주관하는 신으로 모든 신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한다.
9)그리스 로마의 ‘가이아’와 중국신화의 ‘여와’는 대지의 신인 동시에 창조신의 역할을 한다.
10)鄭若葵 <중국원고기삼대습속사>(북경; 인민출판사, 1994). 13P
11)<설문해자>와<중국원고기삼대정치사>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12)先妣特祭에 대한 논의는 곽말약<중국고대사상사>, 이숙인<중국 고대의 여성 윤리사상 형성에 관한 연구: 오경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에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13)<壯子> 盜路 편. “民知其母, 不知其父.”
14)송정화 <중국신화에 나타난 여신 연구>(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박사학위논문) 37P.
15)大母神(the Great Mother)은 大女神(the Great Goddess)으로도 불리어 진다. 이러한 명칭은 세계 보편적으로 천부신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숭배되던 여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고대사회의 인류는 앞서 말한 듯이 모계사회의 특징이 짙으며, 그러한 모계사회에서는 우주의 창조, 인류의 기원, 농작물의 경작, 방직 등이 모두 여성으로부터 생성되었다고 여겼다. 그러한 풍토로 인해 여신 혹은 어머니 신이 최고의 보편 신으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아직 연구가 덜 진행되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모신이라는 개념이 아직까지 전승되어 남아 있는 형태가 바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위대한 신비’ 가 아닐까 싶다. the Great Mother = the Great Spirit 은 매우 유사한 개념이며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어머니 대지에 대한 신앙심이 깊다는 것 또한 하나의 근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미 원주민의 위대한 신비는 인신보다 기신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것은 초기의 ‘위대한 어머니’ 신앙에서 어머니의 신성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대지를 주관하는 자연신으로서의 역할로 축소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6)티아맷은 마루두크에게, 가이아는 우라누스와 제우스에게, 여와는 복희에게, 소피아는 야훼에게 각각 살해당하거나 정권을 빼앗김으로써 신화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각각 다카하라 나루미 외<여신>, 이윤기<그리스로마신화>, 이훈종<중국고대신화>, 진 시노다 볼린<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의 내용 참고.
17)송정화는 자신의 논문<중국신화에 나타난 여신 연구>에서 地母神을 대모신의 개념으로 포함시켰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지모신은 地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自然神의 범주에 넣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18)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든다는 구절은 유대인의 신화에서 야훼가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그 이름도 여호와(야훼의 동양권의 이름)와 여와로 중간의 ‘호’ 자가 다를 뿐 거의 같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전무하지만 충분히 비교종교적인 관점의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창조에서 ‘흙’ 이라는 개체가 주로 이용되는 것은 역시 흙에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신묘한 자연의 이치 때문일 것이다.
19)이 민간신화에서는 비교적 상세히 여와의 인류창조가 다루어지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찬 물과 불로써 흙을 빚는 대목에서 음양사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20)이훈종 편역<중국고대신화>(범문사) ‘제2장 세계는 어떻게 시작 되었나’에 자세한 내용이 상술되어 있다.
21)다카하라 나루미 외<여신>(들녘) ‘북구 켈트의 신화’. 거인 이미르는 오딘의 자식 삼형제에게 죽임을 당한다. 오딘 삼형제는 죽은 이미르의 사체로 세계를 만들고, 해안에 떠내려 온 나무로 인간을 창조함.
22)일본에서도 중국과 유사하게 ‘아마테라스오미카미’라는 여신이 태양의 신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연오랑과 세오녀의 신화를 보면 남성인 연오랑이 해를 주관하게 되고, 여성인 세오녀가 달을 주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카히라 나루미 외<여신>(들녘).
23)정현경<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분도출판사)의 일독을 권함.
24)여기서 등장하는 치우는 우리에게 친숙한 치우천왕을 이른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풍백과 운사도 아시다시피 단군신화에 환인의 신하로 등장하는 이들이다. 이 치우천왕과 중국의 황제와의 싸움은 우리나라의 상고사를 기록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책<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25)다른 게 아니라 20세기 말에 홀연히 출연하여 뭇 남성들의 가슴을 뒤집어 놓았던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핑클’을 말하는 것임. 개인적인 호감은 별로 없음^^;
26)소피아는 유대신화에서 야훼의 어머니로 등장하며, 대지와 지혜의 여신으로 숭상을 받는다. 그러던 것이 유대인 사회가 유목사회로 변화됨에 따라 천부신인 야훼가 어머니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 인격성을 상실하고, 후대로 갈수록 점차 인간의 지혜를 가리키는 명사로 몰락하게 된다. 공동번역구약성경을 보면 제일 뒷부분에 지혜서라는 것이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사실은 소피아의 서로 야훼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다. 허나 지금은 추상명사인 지혜라는 말로 모두 바뀌어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지혜가 주어로 쓰이면서 인격성을 가진 것처럼 의인화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의 남성지배층들은 이 소피아 여신이 다시 사람들의 마음에서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해 이 지혜서 앞뒤로 지혜서라는 타이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훼의 율법과 우상숭배금지를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
27)송정화, 앞의 논문. 62p~64P.
28)현경<미래에서 온 편지>(열림원)에서 현경이 내세운 새로운 에코페미니스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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