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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새 시대의 문 앞에서

멀고느린구름 2017. 5. 10. 23:43




오래 기다렸던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되돌아보면 2012년 12월부터 내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이 세상의 실질적인 변혁이었다. 줄곧 내 내면으로 향해 있던 에너지가 드물게 외부의 세상으로 강하게 뻗어나갔던 시기였다. 어쩌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온전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바라던 세상의 실질적인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불러모아서 다시 내 삶과 내면으로 향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간다. 30대의 문턱을 어제 갓 넘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나를 '청년'이라고 지칭하는 게 맞을지 주저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손에 쥔 것 중에는 그닥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만한 것들이 없다. 염원하던 것들에도 아직 가닿지 못했다. 더 앞으로 나아가는 철없는 소년이 될 것인가. 여기서 그만 가능한 일들에 만족하며 어른이 될 것인가. 밤은 깊지만 별은 뜨지 않은 어둠 속에 있다. 


"어쩌다보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삶의 우연으로 인해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2016년에는 <힐링로드 2권 - 서사의 고향에서 문학의 풍경을 만나다>, 올해 2017년에는 <힐링로드 3권 - 길이 보이지 않아 순례를 떠났다> 라는 이름의 인문학 여행서가 각각 출간되었다. 아직 인세를 한 푼도 받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판매성적이 좋지 않다. 소설가로서 나를 항상 규정해왔기에 사실 별로 그리 큰 상처는 받지 않은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썩 살림살이도 좋지 않다.) 때로 어쩌다보니 한 일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삶에 때로 요행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기대'까지 하면 이런 꼴을 당하고 마는 것 같다. 하지만 요행 없이는 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대중들에게 닿을 수 없는 게 또한 현실이다. 


나는 오직 요행을 아껴두려는 방책으로서 복권을 긁지 않고 있다. 그런데 종종 뜻하지 않게 경품 같은 것에 당첨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아무래도 몇 년째 내가 바라는 쪽에서 요행이 생기지 않는 건, 몇 년 전 요행으로 10년 간 수소문해왔던 고서를 입수한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에 쓰지 말 것을... 이라고 후회해봤자 이미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에 나오는 행운력 연구소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문단은 고딕체로 쓰여지지 않았다.)


문이 열린 새 시대 앞에 서서 아직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미래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은 깨끗한 하늘과 먼 구름들, 그리고 풀이 적당한 벌판 뿐이다. 벌판을 달려 더 멀리까지 가면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문턱에 서성이며 소년이 되어야 할지, 어른으로 남아야 할지 망설인다. 답은 이미 적어두었지만 오른 손에 무심코 집어든 지우개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 시대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두려움 없이 기꺼이. 상쾌한 바람을 맞으러 달려가는 소년처럼. 


2017. 5.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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