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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에서

멀고느린구름 2017. 3. 6. 22:18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이다.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영상이 인류의 언어를 대체하리라고 예상했던 20세기 말의 미래학자들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무덤 속에서 그 일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21세기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더 문자를 많이 쓰고 읽는 인류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쓴 글의 독자가 된다. 가끔 우리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리트윗된 내 글의 독자가 스스로 되기도 한다. 점점 인류는 자기 스스로 글쓴이이자 독자가 되어간다. 


문자는 이제 중세 시대처럼 특정 계층의 사유물도 아니고, 고등한 교육을 받아야만 습득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다. 지식과 정보는 문자만 알고 있으면 '검색'을 통해 금방 획득할 수 있다. 나를 대신해서 어떤 상황과 사건에 대해 판단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이들의 글도 무궁무진하게 넘친다. 


이런 세상에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채 꾸준히 글을 써나가려는 사람은, 또한 그것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욕망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설을 읽고, 써왔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제도권 속에 들어가지 못했고, 인공위성처럼 지구의 밖을 돈다. 지구 밖의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을 평소에 눈여겨 보고, 마음에 떠올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분명히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그런 사람은 있을 것이다. 아마 여름의 해수욕장에서 모래알을 세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주에서 바라보면 (실제로는 바라본 적이 없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은 더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이란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 같은 따분하고 불쾌한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주가 나를 도와서 제도권 속에 나를 넣어준다고 해도 별로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야- 드디어 들어왔다."는 정도의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 뿐이겠지. 


하지만 이 캄캄하고 차가운 우주 공간 속에서 그 안도감이란 얼마나 간절한 온기인지... 오늘도 지구 밖의 궤도를 돈다.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지, 언제까지 계속 돌아도 좋을지, 어쩌면 나는 간신히 이 궤도에 머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인 건지, 모든 답은 결국 언젠가 내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이지만, 모두가 글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사랑이 다할 때까지 나는 이 우주 속을 조금 더 떠돌아보는 수밖에. 



2017. 3. 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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