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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리듬이라고 쓸까하다가 '생生'의 리듬이라고 쓴다.
생에는 리듬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어울리는 생의 리듬이 있다.
어떤 생의 리듬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 같고, 또 다른 생의 리듬은 사랑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세는 것과 같다.
내게 어울리는 생의 리듬은 생후 오개월 정도 된 오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태평양을 건너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마치 딱따구리처럼 살았다. 사실 지난 몇 년이라고 할 것도 없다.
생의 대부분을 어울리지 않는 리듬에 맞춰 산 것만 같다.
어느 한적한 초여름에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아, 소리 없이 호수에 떨어진 나뭇잎이 파문을 그리는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마도 그러자면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이나, 핀란드의 무민 숲 같은 곳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편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세계 도시 전체를 놓고 보아도 생의 리듬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빠른 축에 들어갈 서울에서 살며,
그런 한가로운 리듬을 꿈꾸는 것은 그닥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하지만 현명한 판단을 좇아, 용기를 내어 훌쩍 떠나기에는 아무런 것도 가지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꿈을 꾸고, 상상을 해보며,
그 덕분에 더욱 현실에 불만을 품는 악순환의 고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밖에는 없다.
정해진 환경과 조건의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숙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노력하다가 결국 지쳐버리고 마는 삶의 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것도 저것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면 내게 맞는 생의 리듬대로라도 살다가 죽고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후의 미래로 갔는데 여전히 태평양의 100분의 1에도 이르지 못한 생후 50년의 오리를 목격한다 해도.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태평양의 저편을 향해 헤엄을 시작하는 생후 오개월의 오리로, 그런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다.
또는 사랑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세다가 죽고 싶다.
2017. 3.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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