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설원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오래전 나는 혼자 대관령의 설원 속을 거닌 적이 있다.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을 무렵이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연애심리학 책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달랐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선의 속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재밌는 말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시나브로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차갑고 하얗게 덮는 눈. 눈 덮인 마음을 품고 설원 앞에 섰을 때, 나는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서 그저 설원 속에 자박자박 발자국만 새기며 백지 속을 휘 돌아보고 나왔다. 내 마음의 눈 위에도 ..
토탈 이클립스 (1995)Total Eclipse 8.1감독아그네츠카 홀란드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데이빗 튤리스, 로만느 보랭제, 도미니끄 블랑, 펠리시 파소티 카바바에정보드라마 | 프랑스, 영국 | 111 분 | 1995-12-02 글쓴이 평점 열매, 꽃 , 잎, 가지들이 여기 있소. 그리고 오로지 당신만을 향해 고동치는 내 마음이 여기 있소. 그대 하얀 두 손으로 찢지는 말아주오 다만 이 순간 그대 아름다운 두 눈에 부드럽게 담아주오. 새벽 바람 얼굴에 맞으며 달려오느라 온몸에 얼어붙은 이슬 방울 채 가시지 않았으니. 그대 발치에 지친 몸 누이고 소중한 휴식의 순간에 잠기도록 허락해주오. 그대의 여린 가슴 위에 둥글리도록 해주오. 지난 번 입 맞춤에 아직도 얼얼한 내 얼굴을. 그리고 이 선한 격정..
붓다, 사랑을 발견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 사이의 사랑의 진화) 글쓴이: 멀고느린구름 0. 작은 인디언, 붓다를 만나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어느 여름. 나는 곧 있을 문예부의 문학기행을 위해 천성산 아래에 있는 내원사를 찾아갔다. 길을 잃고 헤매던 나는 우연히 이상한 숲으로 들어서서 한참을 걷던 중 외딴 곳에 있는 정사를 한 곳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율스님이 계셨다. 그 시절의 나는 중학교 적에 읽은 류시화 시인의 이라는 책을 읽고 크게 감화되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신세계에 심취해 있었다. 집을 나간 어머니와 형의 빈자리를 술로 채우던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내 속의 온갖 정신적인 방황을 자연 속의 생명들과 교감하고 명상하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
-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 내일은 개학일이다. 얼마전까지 머리 위에서 끝없이 빗방울을 떨구던 구름들이 이제는 아득히 멀리서 떠다니고 있다. 카페오레를 절반쯤 마시고 보니 컵의 벽면을 따라 지저분한 자국이 남는다. 여자친구가 오기로 한 시간이 34분 지나있다. 아니, 아직 28분이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가게들의 불이 켜진다. 더러는 이미 켜져 있거나 혹은 오히려 꺼지고 있다. 무심하거나 유심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휴대폰 불이 켜진다. 진동 모드 혹은 매너 모드일 것이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미안, 조금 늦었네. 지금 모퉁이야. 신호등만 바뀌면 바로 갈게.’ 모퉁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니 조금은 신경 쓰인다. 비틀즈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떠오른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