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설들'이라는 가칭의 기획을 준비 중인데 아무래도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름 탓에 이것을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기획 자체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바로 그것과 같다. 즉, 매 달마다 단편 소설 한 편씩을 발표하는 기획이다. 발표 지면은 일단 이곳과 브런치가 될 예정이다. 하지만 어쩐지 저 이름으로는 역시 아류에 지나지 않을 듯해 고민이다. 2009년 즈음에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쓰는 삶을 시작했고, 파주자유학교 교단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2014년까지 5년 동안 그 삶을 유지했다. 2015년에 드문드문 유지하던 것이, 2016년에는 완전히 망가졌고, 2017년에는 회복되지 않았다. 2015년부터 매일 쓰기가 멈춰진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의 교사가 된다 먼저, 오해를 풀고 시작해야겠다. 나는 항상 리뷰 글의 제목에 창작자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려는 이 드라마의 감독은 아오이 유우가 아니다. 연출 '미즈타 노부오', 각본 '후쿠다 야스시'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오이 유우'의 이름을 떡하니 제일 앞에 붙여 놓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조용히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을 수밖에 없다. 이 일로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수많은 일본드라마 가운데 이 작품을 시청하게 된 이유는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오이 유우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거나,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안경 미녀로 나온다거나 하는 부수적인 것들은 작품 선택에 결코 결정적 영향을 ..
내게, 글을 쓰던 삶과 글을 쓰지 않는 삶이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삶의 기쁨'이란 주제로 연말 시상식을 한다면 대상감은 아니었다. 굳이 상을 부여한다면 공로상 정도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평소 내 잠재 의견이었다.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내게 가장 일상적 기쁨을 부여해준 것은 '노래'라고 여겼다. 어느날 내가 큰 범죄를 저질러 503호 같은 독방에 갇힌 뒤 하루에 8시간씩 노래만 부르라는 판결이 난다면, 분명 나는 법정을 나서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8시간씩 글을 쓰라고 한다면 항고심을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
신년 계획 같은 것을 세우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니 그런 계획이 있을리 만무하다. 애초에 신년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2017년 12월 31일과 2018년 1월 1일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람의 나이란 것도 저마다 다른 노화의 속도를 억지로 달력에 맞춰 분절하여 나눠놓은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에 완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살기는 어렵다. 요즘 부쩍 "늙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2-3년 전에는 분명히 농담이었는데, 농담에 농담을 더하다보니 이제 진담의 색채가 점점 진해지고 있다. 엊그제 트위터에서 우연히 서른 뒤에 숫자가 'ㅅ' 받침으로 끝나면 서른 중반, 'ㅂ' 으로 끝나면 서른 후반이라는..
이 글은 홈페이지를 다시 심플하게 바꾼 후의 첫 글이자,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뒤의 첫 글이다. 인천에 얻은 집은 외벽이 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어 새로 낸 책도 기념할 겸 '오리빌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리빌라에서 지낸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일상은 아직 어수선하다. 서울 연남동 생활의 감각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고, 오리빌라는 이 방 저 방 동시에 인테리어를 진행 중이어서 보기에도 어딘가 불안정하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도 이곳에도 있지 못하는 사람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마치 내 필명처럼 구름 같은 신세다. 인생은 또 어떠한가. 한 줌의 재산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다시 쌓을 방법은 묘연하다.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고 호기롭게 외치기에는 내 나이의 무게가 이제 만만치 않아..
히스테리Hysterie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미스테리다. 미스터리mystery가 미스테리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미스테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미스터리를 푸는 일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일 것 같지만, 구태여 그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 일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미스테리 실종 사건에 대한 추적에 나서지 않는 것일 테지. 혹시 어쩌면 김이라는 사람이나 박이라는 사람이 그 작업에 이미 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과 박은 미스테리 실종사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흑막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째서 이런 상상까지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이..
생명은 어쩌다가 지구에 출현했을까. 하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구가 태양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궤도에 우연히 위치했기 때문이다. 행성은 항성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끝없이 타오르는 별이 되고, 너무 멀어지면 모든 것이 얼어붙는 별이 되고 만다. 지구와 같은 조건 하에서 생명이 출현할 수 있다면, 다른 은하계 속에서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행성이 항성에 대하여 지구와 같은 궤도에 있을 때 그 별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태양에 대하여 지구의 위치와 같은 균형 잡힌 궤도를 이름하여 '골디락스 궤도'라고 한다. 태양은 지구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해주는데, 그렇다면 지구는 태양에 대하여 무엇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우주의 법칙 중 하나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르자면 반드시 지구..
인기 없는 드라마를 묵묵히 시청해나간다는 것은 무척 고독한 일이다. 게다가 그 드라마가 애국가보다 못한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나는 언젠가 진실한 여행서를 집필하기 위해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길을 터벅터벅 올라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동묘지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는 그날의 일을 내게 상기시키려는 양 나날이 시청률이 떨어졌다. 이러다가는 드라마의 마지막 즈음에 공동묘지 신이 등장할지도 몰라! 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1500원짜리와 2000원짜리 두루마리 휴지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5분 이상을 소비하다 끝내 1500원을 선택하고 마는 하잘것없는 인간인 나라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분연히 남영역으로 향했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