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나는 상당히 고지식한 인간이어서 '커피'는 응당 성인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 커피는 술이나 담배와 같은 청소년 유해 음료였던 것이다. 그 흔한 커피믹스도 명절에나 몇 번씩 입에 대어 보고는 했던 것이다. 그런 탓이지 내게 커피는 대학생이 될 무렵까지 무언가 신비로운 음료였다. 대학생이 된 후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녔다. 이전에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 같은 것은 해본 경험이 있었으나 정식으로 가게에서 일해본 적은 없었던 나였다. 몇몇 호프집과 편의점따위가 물망에 올랐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 '보헤미안'이었다. 보헤미안...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이름인가. 문학소년 시절부터 나는 늘 ..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일이 좋다. 바쁘고 꽉 찬 업무 시간에 밀려 글을 쓸 틈이 없는 탓에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생활 패턴이지만 1년 즈음 지나고 보니 제법 운치마저 느껴진다. 새벽에 듣는 음악은 어딘가 좀 더 쨍한 소리가 난다.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 공간의 소음이 줄어든 탓일까. 새벽에 듣는 음악들은 주로 정해져 있다. 소규아카시아밴드, 이상은, 루시드폴, 카펜터즈, 케렌 앤 등. 아날로그의 소박함과 보컬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음악들이 새벽과 어울린다. 새벽의 독서는 불필요한 잡념을 간소화시켜주고 책을 향해 집중하도록 해준다.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혼탁해지므로 되도록 보다 일찍 일어나 책을 펼치는 것이 좋다. 불빛은 방 안 전체를 밝..
내가 워낙 우울증이 심하다 보니 밤 11시마다 내가 살아 있는지 여부를 문자로 확인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무척 고마웠다. 밤 11시 때 그 문자를 보지 못하고 먼저 잠들더라도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문자를 확인하고 나면 하루종일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조금 마음에 안정을 찾는 듯 보이자 친구는 문자 서비스를 중단했다. 빛과 어둠 두 개의 너무 다른 자아를 갖고 있는 나는 종종 어둠에 빠진다. 빛 속에 있을 땐 아무리 혼자여도 좋지만 어둠 속에 있을 땐 견디기 어렵다. 누구라도 좋으니 다시 11시마다 내 생존을 확인해 주었으면 한다. 물론 정말 누구라도 좋은 건 아니다. 2011. 6월.
인공눈물 애용자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영화 이 개봉했다. 주말에 혼자서 남포동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그 영화 속 전도연이 안구건조증이었다. "눈물이 안 나요." 라고 한석규에게 말하는 그녀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안구건조증이란 것은 그 이후 내게 어떤 낭만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난 SBS '동물농장'을 보면서도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 오는 인간인지라 안구건조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눈가가 종종 건조하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탓이리라. 인간이 컴퓨터를 두들겨 대며 하는 일이란 사실 이 우주 전체를 두고 보자면 하잘 것 없는 일에 불과할 텐데도 사람들은 자기의 건강을 헤쳐가며 그 일에 몰두한다. 사람이 사람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내가 소설을 쓰기 위해선 최소한 두 시간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이란 기준에서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타자를 시작하기까지 이야기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연재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타이핑을 시작하여 한 회분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40분 남짓에 불과하다. 그외 1시간 20분 정도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 사이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선곡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지난 회분을 읽고 있으면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첫 문장이 떠오르면 이때다 하고 줄을 당기면 된다. 어떻게 보면 낚시와 유사하다. 이러한 시간 요소를 고려할 때 적어도 내가 새벽에 글을 쓰고 출근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나는 지금 매일 새벽 4시에 일..
트위터든 페이스북이든 한계는 분명하다. 어디에도 사실 맨 얼굴을 드러낼 수가 없다. 선한 사람들에게 위로 받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또 한 편으로 그들은 전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끼리끼리 모이게 마련인 SNS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발을 딛지 않은 전혀 다른 정반대의 그룹이 한 편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자기 자신을 지켜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자기의 손이 닿는 거리만큼의 사람뿐이라는 것 역시 쉽게 망각하고 만다. 아메리카에 있는 트윗 프랜드는 오늘밤 나를 안아줄 수 없다. 부산이나, 인천, 전주도 마찬가지다. 오늘밤 나를 안아주는 이는 없다. 2011. 5. 24.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