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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안녕, 인공눈물

멀고느린구름 2011. 6. 5. 07:00

  인공눈물 애용자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영화 <접속>이 개봉했다. 주말에 혼자서 남포동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그 영화 속 전도연이 안구건조증이었다.

"눈물이 안 나요."

라고 한석규에게 말하는 그녀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안구건조증이란 것은 그 이후 내게 어떤 낭만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난 SBS '동물농장'을 보면서도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 오는 인간인지라 안구건조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눈가가 종종 건조하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탓이리라. 인간이 컴퓨터를 두들겨 대며 하는 일이란 사실 이 우주 전체를 두고 보자면 하잘 것 없는 일에 불과할 텐데도 사람들은 자기의 건강을 헤쳐가며 그 일에 몰두한다. 사람이 사람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일하게 만드는 문명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분명 어딘가 잘못 되어 있다.

  어제는 피로에 지쳐 방에 불을 켜놓은 채 잠들었다. 그래서인지 자고 일어났음에도 눈이 뻑뻑하고 아프다. 이러다 조만간 싫어하는 두통까지 밀려올 기세다. 약통에서 인공눈물을 꺼내 눈 속에 투여했다. 몇 방울 떨어뜨리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하지만 이 인공눈물이 나를 진정 치료해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잠깐의 위로. 잠깐의 휴식을 줄 뿐이다. 

  인간이 좀 더 완벽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찾아 추구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반성하고, 본질적인 것을 개선해 나가면 세상이 어쩌면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불완전하고, 세계도 불완전하며, 우주도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비본질적인 것에 몰두한다. 사실은 우리를 근원적으로 치료해줄 수 없는 것들에게,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는 것들에게 몰두하는 것이 인간이다. 유리창에 자꾸만 부딪치는 불나방처럼.

 어쩌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진정보다는 조금 덜 사랑했는지. 혹은 앞으로 조금 더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예정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불완전한 치료에 기대를 건다. 인공눈물을 눈가에 떨어뜨린다. 다만 눈 앞의 아픔을 회피하기 위해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단 하룻밤이라도 사람의 체온을 갈구하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터넷 속의 사람과 대화에 몰입한다. 아무라도 좋으니 내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기대하고, 사랑을 지어낸다. 사랑한다는 감각이 유지되어 주기를 희망한다. 인공눈물은 안구건조증뿐 아니라 심장건조증에도 필요하다.

조속한 시일 내에 누군가 그런 눈물을 만들어주기를 희망한다.


2011. 6. 4. 멀고느린구름.  이상은의 '길'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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