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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와 타우타우씨

저자
우메다 순사쿠, 우메다 요시코 지음
출판사
아름드리미디어 | 2014-09-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98년 일본 그림책상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난생 처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우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배워가는 사람들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올려본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알고 있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았을 때,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었나 하고. 그러면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라오는 말은 ‘국영수’다. 남몰해 좋아했던 짝의 이름도 아니고, 국과수(국립과학수사원)도 아닌 국영수라니. 학창 시절을 통틀어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국영수’고, 가장 열중해서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영수이니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국영수 다음으로는 뭐를 배웠나 하고 다시 생각에 침잠해본다. 아, 이런 별로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우둔한 학생이었던 탓일까. 그럼, 학교는 대체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일까. 


<14세와 타우타우씨>는 험악한 일을 저지르고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 버린 14세 소년 요시오의 이야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거꾸로 학교의 의미에 대해 반문하게 된 것이다. 기억에 떠오르는 몇몇 선생님들이 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를 성심 성의껏 격려해주고, 따스히 품어주셨던 중학생 시절의 담임 선생님. 그리고 미약한 재능을 크게 칭찬해주고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던 고교시절의 문예부 선생님. 캄캄했던 내 학창시절에 은은한 미등으로 남아 있는 두 분을 떠올리니 그제서야 내가 무엇을 배웠었는지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혹은 제도가 저절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간의 따돌림과 경쟁, 교사들의 권위와 외면만이 무성히 자라 빛이 보이지 않는 정글 같은 학교에서 탈출한 뒤에서야 요시오는 그 안에서 헤매느라 미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꼭 어떤 꿈을 이루거나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살면서도 떳떳함을 잃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된다. 요시오의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그리고 담임 선생님인 마릴린 선생님도, 곰보 선생님도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이 간직한 마음 속의 어떤 떳떳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이다. 또 타우타우씨. 타우타우씨는 고추를 가리는 천 하나만을 두른 채 어설픈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광인이지만 죽순을 구해다 팔며 제 삶을 스스로 꾸려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사람에 대한 선의를 포기하지 않는 떳떳한 어른이다. 


요시오는 자기가 움츠리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한 걸음 한 걸음 멀리로 걸어가본다.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 서서는 공부 걱정을 떠나 마음껏 수평선을 바라본다. 파도가 밀려나는 속도로 아득한 수평선에 닿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바람이 부는 것에 따라 다소 이르기도 하고, 다소 늦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 발바닥을 적시던 물결은 언젠가는 반드시 수평선 가까이에 닿아 있으리라는 것이다. 요시오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70년 가까이 긴 세월을 살다보니 2-3년쯤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우리들 바로 앞에 놓인 2년, 3년의 시간은 참 멀고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가 선 자리에서 뒤돌아본 2년, 3년의 시간은 곧 손이 닿을 듯이 가까운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종종 공교육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무수한 요시오들이 있다. 너무 느려서 너무 빠른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 너무 날카로워서 자꾸만 다른 아이를 찌르게 되는 아이, 너무 섬세해서 모든 것에 찔리게 되는 아이. 그 아이들을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은, 다시 활짝 웃고, 다시 제 목소리를 내고, 다시 운동장을 힘차게 내달릴 수 있게 한 것은 다만 따스하게 믿어주는 마음이었다. 어른인 내가 결코 아이인 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배워가는 사람들이라며 아이의 키만큼 낮아질 수 있는 마음이었다. 믿어주고, 키를 낮춰 이야기를 들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배웠다.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고, 스스로 싹을 틔우고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갔다. 


<14세와 타우타우씨>의 갈피 갈피를 채우는 그림들은 나무에 그린 그림들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 연륜만큼 깊고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나무는 제 위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사건들, 때로는 슬프고, 불행하고, 무서운 모습들을 묵묵히 지켜봐준다. 은은한 나무의 결로 그려진 모래톱 저편으로 밀려드는 바다는 너그럽게 내 고민을 씻어가 줄 것만 같다. 오오에 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요시오의 뒷 모습은 마치 사막의 성자가 멀리서 빛나는 로마의 불빛을 바라보는 것만 같아 인상 깊었다. 


모쪼록 <14세와 타우타우씨>가 궤도를 벗어난, 혹은 벗어날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많은 친구들에게 즐겁게 읽히기를 바란다. 사실은 그보다 지금 학교에서 그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교육제도를 관장하는 높은 분들에게, 나아가 지금 아이들의 모습에 저마다 책임이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책장을 덮은 뒤에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우리가 조금 더 떳떳한 어른이 되기로 마음 먹게 되기를 소망한다. 




2014. 8. 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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