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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거북섬원주민을 만나다 




5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빛고을 광주의 날씨는 흐릿했다. 저기압 탓인지 머리도 지끈거리고 몸도 오래 움직이지 않아 경직되어 있었다. 서울보다 매섭게 느껴지는 추위는 몸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애써 몸을 추스려 광주문예회관에 도착해 공연일정을 확인하고, 잠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4시에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소극장 문 앞에서 인디언 기념품들을 팔았다. 드림캐처와 음악씨디, 목공예품, 그리고 왐품 팔찌로 보이는 아이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드림캐처와 음악씨디를 구입했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 좌석에 앉았으나, 주변이 많이 어수선 했다. 아무래도 주최측의 농간으로 초대권이 대량 발행된 듯 했다. 그러고도 좌석은 여기저기 텅텅 비어 있어 안타까웠다. 
 
시간이 되어 드디어 공연 시작. 

세 사람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무대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복장으로 보아 각각 네즈페르세족, 라코타족, 나바호족인듯 했다. 한 사람당 각각 악기를 5~6개 정도 가져와서 마이크 앞 바닥에 펼쳐 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연장 안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왠지 부끄러웠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내 부끄러움은 금새 사라졌다. 라코타족 아저씨의 독수리 피리 소리가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장내는 조용해지고, 이어지는 인디언플룻의 명상적인 음색은 아이들마저 숙연하게 만들었다. 세 인디언들은 연주 내내 악기를 차례 차례 바꿔가며 다양한 화음을 빚어냈다. 종달새소리, 부엉이 소리, 코요테 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등등 도대체 어떻게 만든 악기 이길래 저런 자연의 소리가 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공연은
 
1. Love Mountain
2. 리오아이아레로야(=원을 그리며 춤을)
3. 하얀 버팔로
4. 아나나우(=아름다움이란)
5. 순쿠이만(=가슴으로부터...)
6. 니나투수이(=불꽃을 향한 춤)
7. 타탕카
8. 사랑을 위하여
9. 파스트롤 솔리라티오(=한 명의 양치기)

 
이 순서로 진행되었다. 
 
공연이 진행될 수록 아무 생각없이 왔던 사람들까지도 인디언들의 음악에 빠져들고 있다는 게 마음으로 느껴졌다. 세 인디언들이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는 관객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경쾌한 북소리와 마음이 담긴 목소리에 우리는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례했다. 
 
흥겨운 노래인 '리오아이아레로야'를 부를 때는 나바호족 청년과 네즈페르세족 청년이 독수리춤을 추었는데 마치 정말 한 마리의 독수리가 공연장에 내려 앉아 춤을 추는 듯이 느껴졌다. 진지하면서도 즐거워 뵈는 그들의 표정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일어나서 함께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싶었다. 
 
'하얀버팔로' 연주가 끝나고 '아나나우'를 부르기 시작할 때쯤에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세 인디언들의 노래와 음악이 마치 오래전부터 내 가슴에 들려오던 소리처럼 느껴지고, 무언가가 아득하게 그리워져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인데 나는 왜 이렇게 객석에 앉아 타인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허나 '순쿠이만' 이란 노래가 곧 그 쓸씀함을 훌훌 날려보내주었다. 공연장의 모두는 노래와 음악에 도취되어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세 인디언들은 독수리춤을 추었다. 순간 공연장은 거대한 티피가 되고, 우리는 머나먼 이만오천년 전 하나의 몽골리안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중간에 너무나 수준미달인 게스트가 출연해 30분이나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좀 어이없긴 했지만 세 아메리카 원주민의 공연은 긴 시간을 들여 광주까지 내려온 노력을 300% 보상해주기에 충분했다. 내 속에 있는 인디언의 영혼과 또 우리 모두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인디언하트는 1시간 반 남짓의 공연 동안 세 인디언의 마음과 공명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 그들과 우리는 이미 한 자매형제가 되어 있었다. 
 
공연을 마친 뒤 세 인디언들은 출입문 앞에서 관객들을 배웅했는데, 공연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다들 너무나 정답게 세 인디언들을 격려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다정한 눈짓을 나누었다. 나도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소심한 성격은 어딜 가지 않는 법. 그냥 다른 분들이 즐겁게 마음을 나누는 것을 곁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공연장을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구입한 음악씨디를 들었다. 공연에서와 마찬가지의 순서로 곡이 배열 되어 있어, 공연의 감동을 다시 되뇌어 볼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니 드넓은 평원과 먼 하늘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눈 앞에 보이고 대지를 울리는 버팔로들의 발소리와 춤추는 부족사람들의 행복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새삼 생각했다. 역시 우리네 모두의 마음 속에는 따뜻한 인디언하트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의 인디언하트가 잠을 깨야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2004. 12. 2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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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서트 맛보기

지난 해에 광주에서 열렸던 인디언 스피릿 콘서트의 감동을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가 제일 즐겁게 들었던 음악을 소개합니다. 

*ANANAU(아나나우) / 아름다움이란...

대지에 숨쉬는 모든 생명체와 존재하는 모든 영혼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선율에 담아 표현한 노래...
자연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아름다움,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곡

이라고 팜플렛에 쓰여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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