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 아이

섬집 아이

  통영에서도 또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조그만 섬. 선착장에서도 한참을 에돌아 들어와야 하는 곳에 먼 타지서 상처와 그리움만을 안고 흘러와 사는 이들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든 사람, 어떤 수를 써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미혼모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영감을 가진 가난한 시인도 있었다. 대부분 섬 가운데 오똑 솟은 산의 산비탈에 조그만 밭을 일구고, 틈틈이 바다로 나가 낚시질을 해서 살아갔다. 

 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아이 혼자 집을 보는 경우가 많아서, 밖에서 아이들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의 서글픈 사연의 숨소리와 공백한 바닷소리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일찍 외로움을 배웠다. 아이들은 외로우면 어머니로부터 배운 '섬집 아기'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어슴저녁이 찾아오기까지 바람 속에는 을씨년스런 울음이 가득했다. 

 동이 틀 무렵부터 아이는 혼자 남아 울고 있었다. 툇 마루의 찬 기운이 아이의 몸을 타고 올라 창백한 하늘에 닿았다. 어머니가 아무 기척없이 어디로 갔는지 도시 모를 일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고, 구름은 뭉기적뭉기적 흘러 갔다. 눈 앞에서 들려오는 철썩철썩 파도 소리에 아이는 자꾸만 소스라쳐 울었다. 집 뒤켠의 해는 내내 그림자만 드리웠다. 아이는 저 혼자 신발을 신지 못해, 기와 그림자에 갇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가 저를 두고 바다로 뛰어든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자 더욱 울음이 났다. 하지만 신을 신고 어머니를 찾아나설 수는 없었다. 아이 혼자 남은 집은 바람에 부딪혀 신음하고, 바람은 여우처럼 달아났다. 빈 집 처럼 울던 아이는 어머니가 들려준 여우 얘기를 떠올렸다. 바다는 여우 털 마냥 붉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도 아르르 떨며 바닷바람 소리가 무섭다고 했다. 양말을 깁고 있던 어머니는 매일 듣는 소리가 뭐가 무섭냐고 어서 잠이나 자라고 아이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아이는 바닷소리도, 끄먹끄먹대는 전등불도 너무도 무서운 것이었다.
 

 -어무이, 옛날 야그 하나만 해주소.
 -그레 무섭나?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아이 머리를 무릎 위에 얹히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았다' 한마디 했다. 

 -그 야그 알제? 와 어무이가 맨날만치로 해주던 야그 안 있나?
 -여시 야그 말이제?

 아이의 마음 속에서 공포가 반쯤 달아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무릎에서 머리로 올라오는 온기가 좋았다. 

 -그래 맞다. 그 여시 야그. 와 어무이가 옛날에는 느그 아부이랑 즈기 산골에서 안 살았나. 그기에는 여시 새끼들이 사는 여우골이 있었다 안 카드나. 이 야그는 어무이가 니만치 쪼매날 적에 느그 할무이한테 들은 야근데, 또 들어 볼끼가?

 

어머니는 아이 쪽을 장난끼 어린 눈으로 내려다본다. 아이는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양 배시시 웃었다. 

 -아따, 어무이 야그도 참 감질나게 하요. 고마 퍼뜩 해주소.
 -그래, 알긌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길게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할무이 말씀이 우리 마을 뒷산, 산등성이를 이렇게 비잉 에돌아 가다보면 여우골이 하나 있었다카드라. 한 날은 시어무이와 젊은 며늘아가 하늘이 귤빛만치로 물 들 즈음에, 고마 그 여우골을 넘고 있었데이. 젊은 며늘아 등에는 다서 여섯 살 쪼마 돼뵈는 머시마가 업혀 있었제. 하이고 그런데 그 아는 뭐시 그리 슬픈 지 계속 울어재낀다이가. 젊은 며늘아는 계속 울면 여시가 확 물어 가삔다꼬 아에게 말해도, 그 아는 더 서럽게 울기만 하는 기라. 시어무이는 이제 고마 가봐라 카더니 왔던 산길로  휑 되돌아 내려가삐는 거 아이겠나.
 -어무이 그럼 그 사람들은 와 여시골로 온 기고?

 아이는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도, 꼭 추임새라도 넣는 것 마냥 어머니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건 말이다. 고아였던 그 며늘아는 도시로 손 꼭 붙잡고 야반도주했던 지 서방이 노가다하다가 고마 사고로 죽고 의지할 데가 없었던 기라. 그레 별 수 없이 서방 고향 시어무이 댁으로 머슴아라도 맡길 요량으로 내려왔지만, 아따 그 시어무이는 불효자식이 그레 미운지 젊은 며늘아 손에 만원권 열 장 쥐어주고는 가들을 고마 되돌려 보내는 거 아이가.
 -아따 그 할무이 너무 매몰찬거 아이가.
 -하모 안 그러나.

 왜 그런 지는 몰라도 이 대목에서 늘 어머니의 눈가에는 희미하게 이슬이 고였다. 

 -그러다 결국 해는 꼴딱 져버리고, 여시골에는 여시등이 여기저기 켜졌제. 배고픈 여시들 춤 삼키는 소리가 꼴딱하고 들려올 듯 하지 않나. 젊은 며늘아는 걸음을 재촉했제. 아는 계속 울고, 고 여시들이 아 우는 소리를, 것도 머슴아 우는 소리를 못 들을 리 읍지 않겠나. 푸스슥 소리가 들리드니 고마 순식간에 젊은 며늘아 앞에 여시 두 마리가 안 나타나나. 젊은 며늘아가 깜짝 놀라서 풀썩 자빠지부렸제. 아도 흙길에 고마 꿍하고 엉덩방아를 안 찧나. 아는 목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제. 젊은 며늘아는 주변에 나무꼬챙이를 쥐들고 쉬쉬 거리며 여시를 쫓가 보지만, 꼼짝할리가 있나? 젊은 며늘아는 아한테 퍼뜩 도망가라고 소리치지만, 아는 맨땅에 주저앉아서 매 울기만 하는 게 아니가. 딴 때 같으면 무습어서 벌쌔 도망 갔을 아가 와 그러나 싶었더니 아까 자빠지면서 신발 한 짝이 벗겨진 기라. 고마 그 아는 혼자 신발을 못 신었거든. 

 

아이는 움찔했다. 아이도 역시 혼자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얘기 속의 아이는 너무 바보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여우를 만난다면 어서 신발을 신고 마을로 달아나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아는 자꾸 울제, 여시들은 자꾸 모여들제. 젊은 며늘아는 아라도 살려볼끼라고 나무꼬챙이를 놓고, 아 신발을 집어 아 발에 넣어 봤제. 그라모 아가 가만히 있어야 할낀데, 이 아는 또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불고 쌩 난리를 치는 기라. 여시들이 이 때를 놓칠세라 달려들지 않겠나? 그 이후로 그 며늘아랑 머슴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카드라.
 -바보! 

 아이는 새삼스레 소리를 높였다. 마음 속에서 자꾸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는 누구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건지도 모른채, 저 혼자 속으로 자꾸 바보 바보 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이제 그만 자라고 했다. 아이는 다시 한 번, 바보같이 울지도 않고 여시가 나타나면 꼭 신발을 신겠노라고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불이 꺼지고 하늘에만 희미한 불이 켜졌다. 푸른 별 하나가 사선을 길게 그으며 떨어졌다. 아이의 큰 눈에서 굵은 방울 하나가 뚝 떨어지고, 아이는 그만 울음을 그쳤다. 새벽에 아이의 잠든 얼굴에 작별 인사하고 나간 어머니는 여지껏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검은 바다는 썰물이 되어 이제 다시는 안 돌아 올 마냥 멀어지고 있었다. 해를 삼킨 산 골짜기에서 여우 울음 소리같은 것이 기다랗게 들려왔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웬일인지 어슴저녁이 지나도록 섬마을 아이들의 구슬픈 노래소리가 바람결에 떠돌았다. 세상이 모두 검은 그림자에 덮였다. 아이는 가만히 신을 신었다.

 

 

2003. 1월.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