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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저자
박노자, 지승호 지음
출판사
꾸리에북스 | 2012-04-1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부유(浮遊)하는 한국사회를 향한 외로운, 그러나 단호한 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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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의 현재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되었을 즈음에는 여자아이들에게 "너는 남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세 가지 질리는 점이 없어서 좋다."는 얘기를 듣곤 했었다. 그 세 가지는 스포츠, 군대, 정치였다. 그랬다. 당시만 해도 나는 세 가지 사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이나 흐르고 보니 어느 새 나도 사석에서 군대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떠들어대고, 대권 도전자라도 되는 것처럼 한국 정치의 현실과 그 해법에 대해 틈만 나면 이야기하거나 쓰게 되었다. 다행하게도 스포츠는 아직이다. 


정치에 무심하던 스무살 청년이었던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아직 수도권에서는 무명이었던 한 정치인을 열성적으로 홍보하던 친구 덕분이었다. 대학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는 나와 같은 문학도였는데, 광주 출신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했었고 김대중 선생을 존경했던 친구는 대선이 가까와오자 조심스럽게 내게 한 정치인의 인생과 의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곤 했었다. 그렇다. 바로 정치인 노무현이었다. 나는 노무현의 이름을 그 친구에게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노무현 대통령이 되었다. 나는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의 선의를 믿었으며,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침략전쟁이 분명한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을 선택했다. 대추리가 폭력 진압되는 과정을 묵인했으며, 목숨을 건 종교인들의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의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지율 스님과 여러 환경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천성산 터널 공사를 강행했고, 4대 악법 철폐를 내걸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한나라당에게 끌려다니며 한국 상황에서 의미가 없을 대연정 제안을 했다. 화룡점정은 한미 FTA 추진이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나는 그의 임기 내에 가장 많은 시위에 참가했다. 대통령 노무현을 용서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아직 대통령 노무현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다만, 인간 노무현으로서 그분이 이뤄보고 싶었던 꿈에 대해서,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작인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읽고 난 뒤부터다. 


<진보의 미래>를 읽고 난 뒤, 나는 그 책의 제목처럼 진보의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먼저 '진보'라는 말의 정의부터 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래서 진보 혹은 왼쪽이라고 하는 자처하는 사람들의 책을 하나 둘 모아 읽어가기 시작했다. 김규항, 진중권, 홍세화, 박노자, 노회찬, 심상정, 마르크스, 레닌, 지젝, 빌리 브란트 등의 책을 최근 읽었던 것은 그들의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나는 '꿈'이라는 차원에서는 노무현의 꿈과 그들의 꿈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유시민과 이정희가 손을 맞잡고 <미래의 진보>라는 책을 내며 '통합진보당'을 창당할 때에도 크게 위화감이 없었다. 하지만 왼쪽 진영의 반응은 나와 같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의 골도 깊지만, 진보 진영 내의 갈등 또한 무척 깊다. 보수 쪽에서 진보니 좌파니 하고 떠들어대는 민주당은 사실 대략 보수 30%, 중도 50%, 진보 20%의 비율로 구성된 오른쪽에 더 가까운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정치지향 세력이 섞인 민주당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일치단결이 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좋은 이상과, 좋은 컨텐츠를 가진 진보 세력(민주당의 20%를 포함하여)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건다. 서로가 진보의 척도는 바로 자신이라고 강변하며 다른 진보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그 방법과 내부 문화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에 있어서는 내가 볼 때 크게 다르지 않은 집단들이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헐뜯는 모습을 보면 저들을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의 꿈'을 지지한다. 그 진보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뿔뿔이 흩어져 잘난 척만 하고 있는 이 진보의 파편들을 하나로 모아 강하게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진보 세력의 위기 때마다 더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 박노자의 <좌파하라>는 그런 차원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저자인 박노자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리며 유명해진 저술가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러시아에서 태어나 구소련의 삶을 체험하고, 노르웨이로 넘어가 오슬로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귀화하여 한국에 관한 수 편의 책을 써내고 있다. 러시아, 노르웨이,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색채의 세 국가에 인연을 맺고 있는 그는 이 책 <좌파하라>에서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듯이 ‘사회주의자’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치 토양에서는 ‘사회주의’를 함부로 입에 올리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서슬퍼렇게 살아있고, 정부가 마음대로 국민을 사찰하며, 국정원은 간단한 기획으로 없는 간첩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국가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존재는 대한민국 내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자라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장막이 되고 있다. 


정훈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시절, 나는 육군종합행정학교라는 양성기관에서 북한 현실이나 정치상황과 관련된 여러 서적을 탐독했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자면 북한은 ‘전혀’ 공산주의국가가 아니며, 사회주의의 이상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레닌의 이상이 스탈린의 독재와 함께 사라졌듯이, 풋내기 정치인이었던 김일성의 독재와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도 사라져버렸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란 것은 조선왕조의 정치체제를 연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는 자유로운 노동자 인민에 의한 정치라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꿈꾼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군주에 의해 계획되고 통제되는 플라톤적 이상국가를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북한 = 공산주의 = 사회주의 라는 등식이 강력한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좌파와 북한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별도의 카테고리임에도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은 좌파와 북한을 동의어처럼 여기도록 네버엔딩 계몽운동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쪽의 지지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하면 일단 반감을 가지기 마련이니, 박노자 교수가 강변하는 것처럼 ‘좌파’가 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가 탄생한 유럽의 상황은 물론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정당이 있으며, 넓게 사회민주주의까지 좌파의 범주에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당 수준으로 그 세력이 넓고 강력하다. 아니, 오히려 대다수 국가에서는 좌파 성향의 정당이 집권 여당으로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으며, 국내의 새누리당 수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 정당들은 정당 강령에 대체로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성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같은 국가들도 ‘사회주의’적 지향을 밝히는 정당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해서 북한과 같은 전근대적 전체주의 군사독재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국내의 얽히고설킨 정치 상황은 쉽지 않다. 아무리 유럽의 사례를 제시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민족좌파, 언론지 상에서 본 적이 있을 ‘NL’이라는 계열이 좌파의 중심적인 이미지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민족적 연대를 강조하는 NL계와 유럽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PD계는 2002년,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을 함께 건설했다가 북한에 대한 입장차 때문에 지난 2008년에 갈라섰다. - 이후 PD계는 ‘진보신당’을 창당 - 그랬다가 다시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국민참여당’과 NL 중심의 민주노동당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을 논의하는 중에, 진보신당의 명망가들이 합류하여 이른바 진보 대통합 정당인 ‘통합진보당’이 출범했었다. 그러나 곧 이들은 부정선거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분열하여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나뉘었다. 그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만 4개 정당(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합당 -, 녹색당)이 난립하게 되었다. 


사실상 ‘진보’라는 용어는 ‘사회주의’를 쓰기 어려운 국내 상황에서 그를 대체하는 용어에 가깝다. 그래서 새누리당 등의 보수 정당은 항상 상대편을 좌파나 좌익이라고 표현하지 진보 진영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데 반해 민주당이나 정의당, 통진당의 사민주의 성향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좌파’보다는 ‘진보’라고 표현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스스로를 좌파정당이라고 표현하며, 사회주의를 그 강령에 명백하게 내걸고 있는 정당은 ‘노동당’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박노자 교수는 바로 그 노동당의 비례대표로까지 출마한 경력이 있는 이다. ‘진보’의 지분조차 10%를 채 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박노자 교수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좌파하라’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2014. 4. 1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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