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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저자
김정운 지음
출판사
쌤앤파커스 | 2009-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의무와 책임만 있고 재미는 잃어버린, 이 시대 남자들을 위한 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남자도 좀 울어보자 




나는 이 책이 아주 별 볼일 없는 책인 줄 알았다. 베스트셀러가 공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신감도 있지만, 시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점 때문에 베스트셀러에 대한 독서를 꺼리는 내 취향에 따르면 이 책은 읽지 않아야 할 책이었다. 


2010년에 나는 한창 군복무 중이었다. 2010년 3월에는 그 유명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발하는 바람에 휴가고 뭐고 다 날아가고 꼼짝없이 비상대기를 해야 했다.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 서점가에는 이 책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제목과 심리학자라는 저자의 소개를 언뜻 보고서 꼰대 남성들의 성적 욕망에 대한 변명이나 잔뜩 늘어놓는 책이려나 싶었다. 이런 류의 책이 유행하는 현세태에 대한 불평도 서슴지 않았다. 책도 읽지 않고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걸 보면 참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나고, 이 책이 언제 인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리트윗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서명이 쓰인 도올 선생님의 동경대전 책과 함께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했었다. 구입해놓고도 정작 읽게 된 것은 근래에 들어서이니 정말 나에게 제대로 찬받 대우를 받은 셈이다.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고 책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내가 크게 두 가지 결정적 오류를 범했음을 알았다. 첫 째는 책의 제목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정작 책 표지를 크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부제인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다. 아, 이게 결코 예쁜 여자와 바람 피고 싶은 마초들의 변명록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저자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문화'심리학자였다. 아, 이게 그때 유행하던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책이 아니라 사회심리현상을 분석한 사회학 분야의 책이었구나. 사람의 선입견이라는 게 이렇게 판단을 흐리는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을 펼쳐 몇 챕터를 읽고 나는 이 책을 외면한 것을 후회했다. 완벽히 내 예상을 빗나가는 내용이었고, 오히려 내 예상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는 책이 아닌가. IMF 때 대인기를 끌었던 김정현 소설가의 <아버지>류의 자기위안이나 아빠, 힘내세요 식의 책이 아닌 '남성문화의 문제'를 보다 정면으로, 그리고 보다 발전적으로 다루어줄 책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책은 나오지 않았고, 페미니즘 진영에서 간간이 나온 책들은 정작 남성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었다. 남자가 남자들의 입장에서, 조금은 남자들의 편을 들어주면서도 조금씩 진일보한 방향으로 끌어내줄 그런 책을 쓸 수는 없을까. 그것이 오랜 나의 기대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책이 나와 대히트를 하고 있는데, 나는 코웃음을 치고 무시했던 것이었다. 나의 엘리티시즘을 무릎꿇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심리학자이자 한국사회에 '재미'라는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저자 김정운 교수는 시종 즐거운 문체로 자신의 유학시절 이야기며,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들을 풀어놓는다. '계절이 바뀌면 남자도 생리를 한다', '우리는 절대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등 각 챕터의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이 매우 유쾌하고 참신한 발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챕터의 내용은 제목의 유쾌함을 잘 받아서 이어간다. 시종 즐겁게 읽게 하면서도 간간이 전문 용어와 문화비평적 시각을 첨가함으로써 균형을 맞춘다. 이 분 참 감각이 좋다! 감탄하게 된다. 도올 선생님의 책에 버금갈 정도로 자유롭게 재미와 지식의 장면전환을 잘 구사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으로서 변별하는 지점이 '감탄'이라고 주장한다. '감탄'은 '감동'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빌리면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문화는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다. 동물이라면 응당 지니고 있을 '성욕'과 '식욕', '소유욕' 등에 대체로 우리 남성문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변별되는 지점인 '감탄'을 활용한 문화는 대체로 여성들의 몫이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콘서트 등에 자주 발길을 향하는 나는 이러한 풍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거짓말을 살짝 보태서 말하면 미술관이나 전신회에 자발적으로 온 남성은 5%를 채 넘지 못한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경우를 보태야 겨우 전체 관람객의 20% 정도 비율을 차지할 것 같다. 나머지 80%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이다. 콘서트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다. 유명 록페스티벌에 가봐도 대다수의 관객은 여성이다. 영화관에 가도 마찬가지다. 연극 공연은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문학 책의 독자 중 70%가 여성이라는 조사결과를 본 적도 있다. 비문학 책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예 책을 읽는 독서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봐도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지 않을까 싶다. 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남성들은 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고작 이런 한탄과 성토밖에 못한다. 허나 이 책의 저자는 중년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꼭 우리만의 잘못은 아니며,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고 조용히 타이른다. 폭탄주를 마시며 오늘의 기억을 잊기 위해 살 것이 아니라,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자기의 삶을 조망하며 살 것을 권한다. 성욕이라는 함정에 갇혀 자신을 동물적인 삶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말을 배우며 칭찬 받고 감탄의 대상이 되었던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만의 특별한 의식(리추얼)을 만들어 삶의 참된 '재미'를 찾아보기를 요청한다. 


그렇다. 어찌 이 나라의 남성들이 이렇게 된 것이 우리 자신만의 문제이겠는가. 아버지 세대가 이 땅의 부를 이룩하기 위해, 또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쏟은 한 서린 땀방울과 피는 그 자체로 응당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와서 좀 배웠다고 그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폄훼하고 낡은 것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허나 이 땅의 아버지들도 자신의 상처를, 자신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민족의 긍지를 앞세우기 보다 진솔하게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내려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함께 위안을 찾고, 함께 새로운 삶의 재미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것에 인색하다. 저자는 본문에서 화장실에 쓰인 한 문구를 보고 분개한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이런 제길! 왜 남자는 화장실에 와서까지 저런 억압적인 말을 들어야 하느냔 말이다. 괜찮다! 남자도 펑펑 눈물 흘려도 좋다. 아니, 이제 제발 펑펑 눈물을 좀 흘려봐야 한다. 김연아의 피겨를 보면서, 멋진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 속의 절절한 혼을 보면서 마음껏 울어도 좋다. 남자들은 좀 더, 좀 더 '감탄'해야 한다. 


지금은 마치 가부장제의 총수처럼 되어 있는 공자는 일찍이 '인(仁)'을 강조했다. 인이야말로 김정운 교수가 말한 '감탄'이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에 공명해 감탄하고, 훌륭한 음악을 들었을 때 어깨 춤을 추며 감탄하고,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또 감탄하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훌륭한 보수적 남성이 되려면 인(仁)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다. 공자의 말씀이다. 



2014. 3. 1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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