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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 1 - 김용옥(도올) 지음/통나무 |
정도전과 민주주의 (1)
드라마 '정도전'이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아직까지는 미풍에 그치고 있으나 조만간 태풍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도올 선생께 선물 받았다가 헌책방에 내놓은 걸로 화제가 되었던 책을 다 읽었다.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이다. 도올 선생의 책 중에는 종종 서문만 있고 본문은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이 책 역시 그런 책의 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동경대전'이라는 제목 탓이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이 후계자인 해월 최시형에게 남긴 동학의 바이블이다.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통해 그 바이블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지만 책을 펼치면 '조선사상사대관'이라고 하는 146페이지의 기나긴 서문을 만나게 된다. 책의 부제인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는 바로 이 '조선사상사대관'이라는 글의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이 책은 동학이라는 계기를 통해 단군 이래 우리 민족 속에 맥맥히 이어온 민본(民本)사상 - 도올 선생은 여기에 '플레타르키아' 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 과 서양중심적 근대(modern)를 되짚어본 책인 것이다.
우리는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라고 하는 마르크스에 의한 역사 단계 구분법에 익숙하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근대'란 서양(정확히 하자면 기독교의 지배 하에 있었던 서로마 일대)의 암흑시대를 극복하고 인간의 '합리성' 회복되고 고양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근대'를 통해 서양인은 기나긴 종교의 비합리적 질서 속에서 벗어났고, 과학이 싹을 틔웠으며,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 인권과 정치개혁에 대한 의식이 발현되었다. 근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서양은 이른바 미개한 상태에서 문명으로 진보한 것이다.
역사학계는 우리'도' 근대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갑신정변과 동학민중혁명, 갑오개혁 등에서 '근대'로의 대전환 시도를 읽었고, '실학'이라고 카테고리 지은 유학자들을 통해 '근대정신'을 발굴해냈다. 고려시대를 봉건왕조로 무리하게 끼워 맞췄고, 조선시대에서도 비근대적 요소들을 구태여 부여하려 했다. 서양의 사관에 무리하게 우리의 역사를 끼워 맞춰보려는 일련의 시도들이었다.
도올 선생은 이러한 역사학계의 기존의 노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역사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변한다. '실학'과 같은 만들어진 개념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하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기 전까지도 뚜렷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했던 '성리학'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외친다.
성리학(性理 學)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학이 발전된 학문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고작용을 탐구하는 것을 통해 생과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자했던 학문이다. 서양철학으로 말하자면 일천 년에 걸쳐 계속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대립과 같은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진실의 그림자일 뿐이며 진정한 것은 이데아로서 저 너머에 독자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에게 반기를 들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야 말로 진실한 것이며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 사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어서 마치 별도의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낸 개념 '보편자'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아 우리가 '붕당정치'라고 오인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삶의 유동성(氣)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일정한 규칙과 보편적인 도덕성(理)을 정립하고 끊임없이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는 두 철학적 신념의 역동적인 토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그 역동적인 토론을 통해 균형과 건강성을 유지했던 사회였으나, 오히려 조선 후기 들어 두 사상 간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조선왕조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공자는 이미 기원전에 서양이 근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주제를 고민하고 실제로 그것을 극복할만한 사상의 위대한 탑을 쌓아 올렸다. 공자는 종교적 샤머니즘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을 인간이 '근본'이 되는 인문학적 세계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공자의 유학은 서양 근대정신의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하지만 서양 근대정신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합리성'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합리성과는 상이한 철학개념이다. 서양의 합리성은 불변하는 세계의 법칙, 영원한 준칙, 인간의 몸이라고 하는 내재적 구조를 뛰어넘어서 저기 어딘가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초월적인 무엇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양은 중세시대를 통해 우러러 보았던 '신'에게서 '인격성'을 지워버린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신'에게서 인격성과 인간의 언어를 지워버리면 남는 것은, 영원히 참인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수학적인 세계이다. 곧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적 세계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며, 거기에 인문적 살을 붙이면 다시 플라톤이 되고,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를 무한히 반복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에 반해 공자의 유학과 성리학, 그리고 우리 민족이 태어나면서부터 체득하고 있는 '합리성'이라는 감각은 서양식의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하려는 무엇이 아니다. 얼마나 그 변화하는 상황들에 알맞게 상식적인 행위(행동과 발언, 또는 작문)를 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곧 우리들의 합리성인 것이다. 도올 선생은 이를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합정리성(合情理性)이라고 말한다. 변화하는 실제의 세계에도 맞고, 보편적인 원리에도 맞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항상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사고를 돌아보는 것을 통해 수신을 이루고, 변하지 않는 원칙에 갇혀 있기 보다는 항상 새로와지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지금 때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강조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상의 대전제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고, 이를 통해 백성이 근본이 되는 '민본사상'이라고 하는 정치 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민본사상'을 누구보다 실제의 제도로서 구현하려고 힘썼고, 그 맹자의 적통을 잇고자 한 것이 바로 조선왕조의 실제적 개창자인 '삼봉 정도전'이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
2014. 2. 1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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