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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의 팬덤이 되려는 이들에게
序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일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표를 원하는 그들의 목소리 속에서 정작 2013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치 현안들 - 공공산업 민영화(혹은 영리화),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등등 - 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있다. 12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 다수 야당은 새로 등장한 대안 세력에 표를 뺏기지 않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집권 여당은 지지층만 잘 유지하면 그만이라는 듯이 반대쪽의 의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때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희망하는 이들의 대표명사였지만 지금은 분열과 패배의 낙인이 되고 말았다. '진보당'은 종북논란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의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지향을 지켜나가고 있지만 대중적 인기 확보가 쉽지 않다. '노동당'과 '녹생당'은 야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사이 '안철수' 라는 개별 정치인의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등장한 이른바 '새정치신당'은 양자 사이에서 한 발짝 물러선 위치에서 양쪽을 모두 비판하며 자기네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새정치신당 세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늘 조심스러웠다. 사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이야기할 꺼리가 없기도 했다. 실제로 그들이 무엇을 보여준 바도 없고, 어떤 지향을 명백하게 밝힌 적도 없기 때문이다. 막연히 밝힌 '새정치'라는 구호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어떠한 정치적 담론도 담을 수 있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념이었기에 이쪽으로 비판하면 저쪽에서 혼나고 저쪽에서 비판하면 이쪽에서 반론을 듣게 되어 있었다. 지지자들 스스로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오랜 시간 안철수 의원 개인에 대한 신뢰를 간직한 채로 그가 구성할 새정치신당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안철수 의원이 대중적 진보를 표방한 정의당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고, 최장집 교수를 고문으로 앉혔을 때는 특히 기대가 높았다. 여지껏 진보 세력에 그처럼 강력한 대중성이 있는 이가 몸담았던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진보로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표방한다면 과연 그가 밝힌 것처럼 '새정치'라는 것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신당의 몸집이 커지고, 가담하는 정치인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진보 지향성은 이내 사라지고, 새정치신당은 가파르게 중도노선으로 그 지향을 바꾸어 나갔다. 지금은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아우르겠다며 확고한 중도노선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쯤되면 새정치신당의 지향성과 안철수 의원이 오랜 시간 말해왔던 '새정치'라는 것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입을 좀 열어도 될 시점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본다.
本
우리는 오랜 시간 이른 바 '스타정치'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노무현, 이회창 등은 모두 당대의 한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의 스타들이었다. 한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이 스타들의 팬덤이 되는 일과 같았다. 팬이 된 입장에서야 스타의 모든 점이 멋져보일 수밖에 없다. 덕분에 '묻지마 지지' 같은 것이 가능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다른 팬덤에게 공격을 받으면 오빠부대나 삼촌부대처럼 우르르 몰려가 자신이 추앙하는 스타를 디펜스해주는 것이 도리가 된다. 스타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반드시 자기가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더라도 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관대해지기도 한다. 그러한 오랜 관행은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 빠" 라고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팬덤에 속하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는 철저한 배격만이 진리가 되고 말았다. 정치는 이제 인문교과에서 종교교과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왔을 때, 내가 가장 기대했던 바는 그의 '새정치'라는 것이 진정으로 인문적인, 미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통찰, 지향이 담긴 무엇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종래의 스타정치인들처럼 자신의 팬덤을 만들어내는 것을 뛰어넘어 그 팬덤에게 새로운 세계를 설득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새정치신당'은 불행하게도 한 스타정치인의 팬덤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새정치신당은 국민들의 염원을 수용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에는 어폐가 있다. 어떤 정당도 불특정 '국민'의 의사를 수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국민의 90% 이상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정당이 가능한 사회는 극도로 통제된 공산주의 국가나 왕정제 국가일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국가의 정치 현실은 언제나 '국민의 염원'을 담은 형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민이 그 대표를 직접 선출하도록 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늘 당대의 국가 현실은 그 나라 국민의 현실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다수당은 새누리당이며, 집권하는 대통령 역시 새누리당 출신의 대통령이다. 부정선거 혐의를 지울 수 없지만 드러나는 지표로는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대통령이다. 신뢰할 수 없다고 해도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지지도 역시 늘 50%를 넘는다. 야당의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이라면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다수 국민들의 염원은 '보수 정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정치신당이 국민들의 염원을 수용하겠다고 나선다면, 즉 다수 국민이 더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가겠다고 천명한다면 그것은 곧 새누리당의 정치를 이어가겠다는 말로 논리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새정치신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그런 정치를 생각하는 건가?
위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정당은 쉽게 '국민의 목소리'를 들먹여서는 곤란하다. '어떤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인지, '어떤'이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치인들은 난감한 지점에 봉착한다. 스타정치에 길들여진 국민들이 좀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한 정치인의 팬덤이 되기를 자처하도록 길들여진 나를 포함한 다수의 국민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유망한 정치인의 목소리를 따라다니고자 한다. 내가 따라 다니던 정치인이 어느 순간 이미 내가 마음 속에서 바라던 그 무엇과 다른 말을 하고, 다른 길을 가고 있어도 의리를 떠올리며 지지를 이어가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런데 내가 왜 이 정치인을 좋아하게 된 걸까, 이 정치인이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이지? 고민해봐도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은 착한 사람처럼 보인다. 인품이 훌륭하고 덕망이 있어 보인다. 부정을 저지를 것 같지 않으며, 뚝심 있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관철하려는 의견이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올라온 의견을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취합해서 최종적으로 선별된 의견이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안철수 의원은 대통령이 아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그러한 방식이 옳을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균형을 잡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이 지금 조직하는 것은 정당이다. 정당은 그 한 단위가 하나의 정치적 의견을 갖는 국민의 대의체다. 그러므로 정당은 국민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공평한 의견을 표명하는 단체가 아니라, 특정한 집단의 정치적 목소리를 강력하게 표출하여 집권기관이 그것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단체인 것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보수층의 의사를 전적으로 강력하게 대변하는 정당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한 국가의 균형을 맞추려면 그에 반하는 진보-개혁 층의 의견을 전적으로 강력하게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시소 타기를 떠올려보자. 새누리당의 몸무게가 40Kg이라면 시소의 균형을 맞추려면 반대쪽에 40Kg의 정당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 지형을 바라보면 민주당의 절반은 시소의 가운데 앉아 있고, 반의 반은 오히려 새누리당의 좌석에 앉아 있으며, 반의 반만이 반대편에 앉아 있다. 그리고 2-3Kg 남짓의 진보정당들이 반대편에 또 앉아 있다. 결국, 새누리당의 반대편에 오롯이 앉아 있는 것은 13Kg 정도의 정당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우리는 현재 보수정치의 국가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새정치신당이 역시 본인들도 가운데 자리에 앉겠다고 나서고 있다.
結
물론, 안철수 의원과 새정치신당의 고민이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섣불리 반대 쪽에 서겠다고 나섰다가 이미 있는 지지세마저 다 잃고서, 변변한 새정치의 시도도 못해보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정치적 양극화가 벌어져 있는 상황이라, 이 상황에서 또 대결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나선다면 지지층이 금새 피로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무릇, 정치인들이라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눈치밥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실, 새정치를 해야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이 나라가 보수의 나라가 된 것도 역시 아니다. 문제는 우리들에게 있다. 정치인이 '새정치'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새 정치를 해야한다. 우리 스스로가 스타정치인들에게, 영웅의 출현에 기대면서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이다.
보수 정치의 시대에 환멸을 느끼는 반대쪽의 국민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해 탐구하고, 토론하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어 왔다면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의 내용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겠는가? 민주당이 저렇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갈피를 못 잡고 있겠는가?
지금은 섣불리 새정치의 팬덤에 가담하기 보다 우리가 우리의 정치를 너무나 모르고 있지 않았나 먼저 돌아볼 때다. 새정치신당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새정치'라는 브랜드의 내용은 '좀 더 투명해지겠다, 착해지겠다, 서민을 중심에 두겠다, 특권을 내려놓겠다' 이런 정도의 내용이다. 여기에 만족하는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좀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가. 유럽식의 복지국가가 되기를 바라는가, 미국식의 선진자본국가가 되기를 바라는가,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되기를 바라는가. 북한과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가, 바라지 않는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으로 둘러싸인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기를 기대하는가. 돈을 많이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할까, 돈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그 돈을 골고루 나누어 쓸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할까. 첨단 산업이 융성하는 나라가 좋을까, 문화적으로 존경을 받는 나라가 좋을까. 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오는 사회가 좋을까, 필요한 사람만 다니면 족한 나라가 좋을까. 자연은 좀 더 개발해야 할까, 이제는 지켜줘야 할까. 동물들과 인간의 행복은 서로 어떻게 균형을 맞추어야 할까. 함께 살고 있는 여성들, 성소수자들, 혹은 남성들도 우리 모두 지금 충분히 행복한가.
내가 좋아하는 신해철의 노래 중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더 이상, 스타정치인에게 새정치의 내용을 묻지 말자. 이미 대표명사화된 '새정치'라는 브랜드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들 각자의 진짜 '새 정치'를 깊게 생각해보자. 그리고 진정 우리들이 고민한 '새 정치'를 저들에게 요구하자. 그 요구를 수용한 정치 세력만이 진정한 '새 정치 세력'이 아니겠는가.
6월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도, 제 밥그릇 찾기에 바쁜 구태 정치인들에게도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다만, 우리가 진정 만들고자 하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무엇인지 한 번 더 고민해보자. 그리고 그에 응답하는 이들의 정치만을 '새 정치'라고 부르자.
2014. 2. 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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