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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자그만 식물을 키우는 일

멀고느린구름 2012. 7. 4. 23:15

자그만 식물을 키우는 일



   6월 중순부터 말까지 15일간 집을 비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자립여행'이라고 하는 긴 여행을 다녀왔지요. 여행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만,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날 '구름의 뜰'이라고 지금 막 이름을 붙인 베란다 정원을 보곤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사다가 고이고이 키우던 풀꽃 세 아이가 갈조류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서둘러 물을 흠뻑 먹이고 며칠 동안 약도 먹이고 흙도 갈아주고 해보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도저히 살아날 기색을 보이지 않아 결국 학교 '포도정원'에 묻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여름이라 적어도 일주일에 물을 두어번은 마셨어야 할 아이들인데... 내리 3주를 굶었으니 얼마나 목을 태우다 죽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벌써 10여년 전 처음 상경해 자취를 할 때부터 화분을 얻어다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선인장이었는데 두 달만에 죽어버렸지요. 다음에는 허브를 키웠는데 더 빨리 한 달만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식물을 데려다 볕도 잘 안드는 자취방에서 키우다 애꿎은 생명을 단축 시키기를 여러번. 이건 식물에 대한 학살이다 싶어 한 몇 년간은 화분을 방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고 긴긴 날들을 혼자 보내기 외로워 다시 화분을 들였습니다. 다행히도 이번 집은 볕이 잘들었고, 공기도 맑은 곳이었는지라 식물들이 잘 자라고, 꽃도 피워냈습니다. 물론, 걔 중에도 더러는 죽고 말았습니만. 그래도 이제 제법 노하우가 생기고 자그만 풀들 챙길 줄도 아는 어엿한 아빠가 되어 3년째 기르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운치 있는 도기 화분에 담긴 병아리눈물이라는 식물인데, 첫해에는 다 죽어가던 아이가 다음 해 봄에 힘겹게 싹을 서너 개 틔워내더니 지금은 집에서 제일 건강한 아이가 되어 잎이 주렁주렁 열려 있답니다. 


  지금 제 집에는 그 병아리눈물과 크로커스, 테이블 야자, 체리, 난, 고무나무, 아이비 등등의 식물들이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혼자 살고 있는 집이지만 풍성하고 따뜻해보입니다. 혼자 거실겸 도서실에 앉아 책을 읽다 눈을 들어보면 크로커스가 피운 분홍 꽃이며, 병아리눈물의 올망졸망 귀여운 잎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옵니다. 


  자그만 식물을 키워오며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이겁니다. 식물을 장식품으로 대하지 않고 진정 생명으로 대할 때만 식물도 내게 마음을 열고, 살아갈 힘을 낸다는 것입니다. 말을 걸어주고, 목이 마를 것을 염려해주고, 추울 것을 걱정해주고 그렇게 진심으로 살아있는 것을 대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손쉽게 할인점 같은 곳에서 관상 식물을 들여오지만 금방 죽이고 마는 것은 그네들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고, 내 방의 공기를 좋게 해줄 도구, 혹은 분위기를 전환해줄 장식품으로 여기는 까닭입니다. 


  이번 긴 여행에 돌아와서 죽은 아이들을 대하며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떠난 것이 무척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오래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해 물 주머니 몇 개라도 사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생명을 대하며 작은 것들에 대해 돌아봅니다. 사람은 작은 것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작은 것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모쪼록 그런 작은 것들을 살뜰히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2. 7. 4. 달이 없는 밤. 효재님의 책을 읽다가 씀.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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