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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읊조리다

詩 - 저녁의 유람선

멀고느린구름 2012. 5. 13. 08:43

저녁의 유람선



저녁의 유람선을 타고 

우리는 얼어붙은 강을 녹이고 있었다

물결에 떠밀려 선창으로 스미는 

인공의 별들을 뒤로하고 

네 눈동자에 숨긴 별을 찾고 싶었다

관광을 나온 이국인들은 

이국의 정취에 취해 말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너의 멈추지 않는 말을 

오래도록 듣고 싶었다

마냥 너의 말에 취하고 싶은 저녁이었다

늦은 겨울은 세찼다

손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애썼다

너의 손에 그 온기를 넘겨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유람선이 종착지에 가까워 가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영원한 겨울과, 영원한 저녁, 영원한 유람선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랑은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친다는 말을

사랑할 수 없었다

저녁의 유람선은 순환코스를 돌아 

다시 잠실 선착장에 닿았다

우리는 배에서 내렸다

그때 누군가는 다시 배에 올라

얼어붙은 강을 녹이기 위해 떠났다


그때, 저녁의 유람선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았음을 

알게 된다






2012. 5. 1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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