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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7일 - 첫째날

멀고느린구름 2012. 1. 17. 12:00



7일



첫째날



   노무현이 죽었다. 딸아, 나에게는 그 일이 큰 사건이었다. 나는 병실에 누워 그 소식을 소리로만 들었다. 간병인들이 수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낙관했다. 평소대로라면 하루를 그렇게 보냈을 거야. TV 같은 것은 요 근래 거의 켜지 않았으니까 말야. 헌데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간병인이 화장실에 간 틈에TV를 켰어. 그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나는 혼자 슬픔을 맞이하고 싶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간병인 없이. TV 속에는 온통 전 대통령의 사진과 넋이 나간 그 측근들의 표정뿐이었다. 영상과 자막, 소리가 총 동원되어 이건 사실이니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그쪽의 지지자가 아니다. ‘아니었다’보다는 ‘아니다’가 정확한 거지. 나는 평생을 그 반대쪽에만 있어 왔던 사람이야. 물론 가끔씩은 저쪽에도 갔었다. 그 말은 곧 내가 ‘보수'라든지, ‘우파'라든지 그런 이데올로기를 좇았다기보다는 내 개인의 이익에 충실했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었다. 그것은 분명 개인의 이익만은 아니었다고. 나 자신의 어떤 신념, 혹은 양심을 무화시킴으로써 나는 모두를 지켜온 것이라고. 아빠의 회사는 말하자면 중소기업이다. 너도 아다시피 네 또래의 모든 젊은이들의 좋아하는 그 대기업에 특수부품을 납품해온 업체지. 전국 각지에 중소형 공장이 수 십개 있고, 이 기업의 수익으로 먹여살려야 하는 노동자도 몇 십 만명이야. 아빠는 그들의 목숨을 모두 책임져야 했다. 우리가 생산하는 특수부품은 그 대기업 외에는 달리 사용하는 기업도 없었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했지. 세계경제가 불황이라고 그들이 말하면,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가격경쟁력에 밀려서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면, 생산단가를 낮춰야 했지. 생산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아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처방전의 내용이 간단했다. 임금을 낮추거나, 정리해고를 하란 거였어. 임금을 낮추는 일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모든 노동자의 공감대와 합의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 여론이란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상대적으로 정리해고는 쉬웠어. 어떻게든 해고의 사유를 만들어내면 그만이었으니까.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사측의 권리라고 대중들은 생각해주고 있거든. 노동법의 상세조항들을 알고 있는 대중은 없어.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건 법관들이지. 그들은 대게 우리 편이야.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에 네가 거슬려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너는 너의 길을 가길 바란다 아빠는 이제. 


   딸아, 아빠는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해고한 노동자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정당한 사유들을 만들어서 해고했어. 물론, 나는 내가 정확하게 몇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는지 몰라. 어릴 적부터 네가 잘 따르던 김씨 아저씨가 조금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우리 회사의 인사부장이자 교섭본부장이니까. 아냐, 내 생각엔 그도 잘 모르겠구나. 그런 정확한 수치 같은 것은 말이야. 세상이 정리 해고 문제로 어수선할 때도 우리 회사는 당당했다. 나는 아주 정당한 사유만으로 그들을 해고 했다고 믿어왔으니까. 


  한 번은 초과근무수당을 4시간 내외로만 제한했어. 회사가 어려우니까 말이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나가라고 했지. 이사회 임원들은 노동자들이 평균 5~7시간의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 그런 정보들에는 아주 정확하거든.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세계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우리측 언론의 선전은 우리로서는 복음 같은 거였단다. 사실이 어떠하든, 노동자들은 선전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사측이 제시하는 이른바 상생안들을 무리없이 받아들였으니까. 언론은 점점 경제가 어렵다고 말해주었고, 우리는 점점 초과근무수당을 축소시킬 수 있었어. 결국 2시간으로 단축시켰지. 그리고 선진국 수준의 노동자 복지확대라는 명목으로 주5일제 근무를 못 박았다. 누구도 주말에 나와서 일하지 못하도록 주말근무수당을 폐지했지. 그리고 나서 사측은 생산량 증대 목표를 통보했다. 각 공장별로 할당된 생산량 목표를 맞추지 못하면 손실이 난 만큼 보너스를 줄이겠다고 공지했지. 세계경제가 어려운데, 국내경제는 더욱 더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그 후 주말에 출근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해고되었지. 대기업은 값싼 우리의 물품을 계속 구매해주었다. 미국발 경제 위기 속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아마도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래 아빠도 알고 있다. 그것이 정말 ‘우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네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분명 마지막이 되겠지. 딸아, 나는 지금 경북 영주의 한 모텔에서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다.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겠지.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확인한 그 순간 나는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내가 이제 막 라디오를 만드는 조그만 공장을 차렸던 때야. 1970년이었다. 그해 11월의 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계속 감춰두고 있었지만 잊을 수는 없었다…. 아빠가 40년 동안 가슴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사랑하는 너에게 하는 것이 옳은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구나. 그걸 판단하기 위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1970년 11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기에 너무 늦은 것 같다. 혹은 너무 이른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 대신 네가 궁금해할 또 다른 얘기를 하기로 하자. 


  지금 너는 엄마와 같이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당황해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여기저기 알만한 사람들에게 다 전화를 걸어보고 있겠지.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아직 살아있다. 마음 같아선 전화를 해서 안심을 시키고 싶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구나. 딱 7일이야. 7일간 혼자 있다가 돌아가도록 할게. 물론,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야. 


  예상하듯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말기암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병원을 벗어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헌데 그게 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곧 죽을 사람에 대해서 누구도 염려하지 않았거든. 희망 없는 생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기대를 걸지 않더구나. 나는 네 엄마에게 갑자기 사과가 먹고 싶다고 생떼를 써서 밖으로 내보낸 후 입원할 당시에 입고 있던 등산복을 챙겨 입고, 등산모를 눌러 쓴 후 아무렇지 않게 병실을 나왔단다. 병원을 오가는 다른 환자의 가족들은 물론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간호사와 의사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구나. 아마, 그들은 내가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야. 나는 죽을 날을 앞두고 늘 침대에 누워있는 산 송장 같은 것이었으니까. 딸아, 어쩌면 너도 몰랐을 거야. 아빠가 아직 걸어다닐 수 있다는 걸. 물론 기도가 부어 올라 말은 역시 안 되는구나.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좋구나 아빠는. 


  병원을 나와서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청량리역에 내렸다. 영주로 가는 열차표를 끊고 시간이 남아 롯데백화점 지하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단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제목의 책이란다. 이 책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를 해줄게. 그리고 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랐지. 잘 몰랐는데, 현대문명은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구나. 나는 단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택시를 타서는 목적지는 스마트폰에 써서 보여주고, 요금은 요금기에 표시된 금액대로 돈을 주었지. 열차표는 자동매표기로 끊으면 그만이었어. 숙박도 정해진 숙박료를 내밀면 아무 의심없이 키를 내어주더구나. 언젠가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어. 내가 젊을 때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는데 말이야. 딸아, 여기는 나의 고향이란다. 아빠의 시작이 있는 곳, 청춘의 그림자가 감춰져 있는 곳이야. 인도의 남자들은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을 - 재물, 명예, 가족할 것 없이 모든 것을 -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서 구도 여행을 떠난다고 하는구나. 영화나 사진 같은 것에서 볼 수 있는 인도의 그 많은 걸인들 - 우리가 보기에 - 이 사실은 모두 그런 구도자였던 거야. 나는 ‘참 자아’ 같은 거창한 것을 찾아낼 자신이 없다. 그냥 소박하게 어린시절의 나를 찾아서 이곳에 왔다. 나의 시작을 확인하고 싶었어. 어쩌면 나의 인생은 첫 단추를 잘못 꿴 인생이었는지 모르겠다. 


  피곤하고 잠이 오는구나. 말기암 환자치고는 상당히 무리한 하루였어. 하지만 아직 죽지는 않는다. 그런 확신이 들어. 죽음에 가까워 올수록 내가 언제쯤 죽겠구나 하는 감각이 분명해지는 걸 느낀다. 그 시간이 아직은 아니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내일은 영주행 열차 안에서 아빠가 읽은 책에 대해서, 혹은 1970년 11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내일은 분명히 올 거야. 사랑하는 아가야, 부디 잘 자렴. 



2012. 1. 1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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