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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6점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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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하자면 가카에 대한, 가카를 위한, 가카에 의한 책이다. 거기에 덧붙여 '문재인'이라고 하는 차기 대권의 유력 인물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책이기도 하다. 

'딴지일보'라고 하는 매체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매체가 아니다. 김어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마초적인 분위기와 언어가 싫다. 그들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담는 형식의 대중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우선 나는 그 '형식' 자체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어렵다고 한 조국의 화법이 내게는 더 와닿는다.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의 자매품, 혹은 대중버전을 표방하는 <닥치고 정치>는 간단한 정치개론에서 시작해 '나는 꼼수다'의 시작을 알리는 인터뷰로 이어지는 구성을 하고 있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카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 읽어보도록 권하고, 나는 앞부분의 정치개론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그의 이른바 '무학의 통찰'은 일견 참고할만 하다. 보수는 '생존의 공포'를 자기 것을 지키는 것을 통해 이겨내려고 하고, 진보는 자기 것을 조금씩 함께 나누려고 하는 지점에서 나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보수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경쟁'하고, 진보는 자기 것을 나누기 위해 '연대'한다. 경쟁과 연대는 두 진영의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김어준은 무학의 통찰로 보수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는 본능적인 욕망이고, 진보의 밥 덜어주기는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어 왔음도 주지 시킨다. 그가 주지 시켜주듯이 동물의 습성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약육강식'의 논리가 주류 이론으로 대접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동물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연구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위계서열이 분명한 유인원 침팬지와 정반대의 행동성향을 가졌던 5번째 유인원 보노보에 대한 연구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인간에 이어 다섯 번째 유인원으로 밝혀진 보노보는 위계서열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사회를 구성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양성차별도, 나이에 의한 위계도 없이 모두가 동등한 지위에서 상호협력하는 삶을 영위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므로 김어준식의 무학의 통찰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보수진영이 '원래 인간은 그런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위험이 있고, 인간은 그런 논리에 감성적으로 동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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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떨까. 인간이란 종은 경쟁과 연대, 두 가지의 본능을  두루 타고 났고 타고난 성향에 따라 어느 한 쪽이 강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어느 한 쪽이 강화되었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사회는 보수 쪽이 득세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되다보니 어느 한 쪽의 유전형질이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다. 

진보진영에게는 뼈아픈 말이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대한민국은 보수의 나라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심정적으로 보수라고 느끼는 이가 진보라고 느끼는 이들보다 더 많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보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왜 보수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공부'와 '학습'의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보수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사회인 것이다. 

극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서든 계급으로 나누려 하고 그 계급을 대표하고자 하지만 대한민국의 최하층 계급은 대부분 보수를 지지한다. 어째서일까.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팀은 그것을 언어(형식)의 문제로 보았고, 서민의 언어를 통해 진보적(진보진영에서는 크게 반발할 수 있지만) 가치를 홍보하고자 한다. 

나꼼수의 놀라운 성공을 보면 그것은 적확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꼼수라는 팟캐스트를 청취할 수 있는 계층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맥 사용자. 그리고 아이튠즈를 윈도우에 설치하고 청취할 수 있는 20~30대 계층. 

나꼼수는 서민 계층의 언어를 지향했지만 그것이 가닿은 것은 경제 수준에 따른 계층이 아니라, 세대에 따른 계층이었을 것이라 본다. 나꼼수의 언어는 결국 서민의 언어가 아니라 젊은이의 언어일 것이다. 진보진영이 대변하고자 하는 최하층 계급은 아마도 팟캐스트라는 것을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특별히 찾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도 결국 세대 간의 대결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마 다음 총선도 대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꼼수를 청취하는 대다수 청장년층과 그 외의 세대 간의 대결이 되리라 예상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84%의 대학진학률이 보여주듯이 상당히 인텔리화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 진보를 '학습'한 세대이다. 이들이 80년, 90년대의 민주화 운동 세대와 만나는 것이 결국 범민주 / 진보진영에서 추진하는 '혁신과 통합'일 것이다. 사실, 이건 계급간 연대가 아니라 세대간 연대이다. 

이와 같은 구도에서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와 나꼼수는 상당한 파괴력을 지닐 것이고, 지금 현실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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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선명한 계급 노선을 지향하는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닥치고 정치>에는 계급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의 본질적인 모순을 지적하지 않고, 그 말엽에 있는 정치인의 뒷담화와 감성적인 민족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인지적인 면에서도 취약하기 짝이 없고, 대중(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세대)을 선동하는 것이 마치 독일의 과거 나치즘을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다(제목부터가 '닥치고'니까). 그 모든 지적에 나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 일부 진보진영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팀은 애초에 그들이 지적한 모든 것을 표방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본질적인 얘기가 아니라 재밌는 얘기를 하려 하며, 스스로 마초적이며, 닥치고 같이 이 방향으로 가자고 선동하겠다는 것이다. 나꼼수를 청취하는 사람들은 이 전제에 동의하거나, 일부분 희생을 감수하고 듣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 진보진영의 그러한 비판은 김어준과 나꼼수팀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른바 독자파 혹은 PD계열로 표현되는 일부 진보진영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이상에 동의한다. 극좌로 분류되는 김규항의 비전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생태여성주의적 가치가 이 사회에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그들의 꿈에 표를 던져주지 않는다. 왜일까. 

그들은 답답한 나머지 자신들의 지분을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 개혁진영의 이들을 비판하고 때로는 욕하고, 그들의 비도덕성과 논리적 오류, 보수와의 유사성, 몰계급성, 자신들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 같다. 정말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활동하면 할수록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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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내가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PD계열의 진보진영도 나꼼수와 김어준의 부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하는 지적, 소통의 문제를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인텔리의 언어가 아닌 서민의 언어를 모색해야 한다. 세상은 옳은 것만으로 바르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욕하고 비난하고 비꼬며 상대의 단점만을 찾아내 꼬집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적어도 진보란, 칼을 쥐고 상대에게 달려드는 사람이 아니라 꽃을 쥐고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칼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다가갈 수가 없다. 꽃을 쥐고 은은하게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에게 우리는 발길을 옮기게 마련이다. 상대에 대해 날을 세우는 사이에 스스로의 그런 향기가 어느 새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2011. 11. 6. 구름이 담긴 우물에서. 멀고느린구름. 

닥치고정치김어준의명랑시민정치교본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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