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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시선앙리카르티에-브레송의사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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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열화당,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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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다."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즈음으로 생각한다. 휴대폰을 처음 구입한 게 대학교 2학년 즈음이었으니 그로부터 2년 후에 구입한 것이 되겠다. 혹자는 나를 얼리 어댑터 경향이 있다고도 평하는데 휴대폰을 2001년, 디지털 카메라를 2003년에야 각각 구입했으니 다소 어불성설이다. 

  내가 처음 구입한 카메라는 한국 중소기업에서 개발하고,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10만원짜리 저가 디카였다. 그래도 나름 당시로서는 최고 사양에 '가까웠던' 300만 화소 디카였다.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바디가 이루어져 있었는데, 나름 디자인이 클래식하고 귀여웠다. - 두 표현의 조합이 이상하지만 - 나는 카메라의 이름을 '파람이'라고 짓고 애지중지 아꼈다. 당시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잔뜩 찍을 요량이었는데, 카메라를 구입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아 여자친구와 헤어져버려 골목 사진 따위나 찍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잘도 돌아다니며 골목 사진들을 찍었다. 아마도 유년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의 풍경들을 되새김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대로 사진을 찍고 다니던 중 동아리를 같이 하던 여자아이에게 "사진을 잘 찍는다"라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칭찬' 하나로 목숨을 연명해가는 생물체인 나는 그날로 평생 할 일 목록에 '사진 촬영'을 포함시켰다. 2008년 파람이가 수명을 다해 새 카메라인 '슈나이더'를 구입했다. 삼성에서 나온 최신 똑딱이였다. 그러나 1년도 채 쓰지 못해 불의의 사고로 식물 카메라가 되고 말았다. - 몸은 멀쩡한데 렌즈가 상을 잡지 못함- 그리하여 절치부심 끝에 2010년 새로 구입한 카메라가 지금 쓰고 있는 렌즈 교체식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 '올림푸스 펜'이다. 몸체는 올림푸스 펜이지만 콘탁스G 렌즈만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콘탁스'라고 부르고 있다. 

  인생에는 반드시 '결정적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나의 어느 소설에 썼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패션, 빛의 밝기, 공기의 흔들림, 계절의 깊이 따위가 묘하게 어우러져 완벽한 어떤 풍경을 자아내는 순간이 있다. 해질 무렵에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는 마을의 황금빛 풍경은 기절할 만큼 아름답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맞닥뜨리는 기적같은 구름의 모습은 또 어떤가. 만들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우연과 인연의 조합으로 빚어지는 풍경을 나는 사랑한다. 격정적으로. 그래서 나는 항상 외출할 때는 '콘탁스'를 어깨에 두르고 간다.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며.

  나의 선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역시 평생 자신만의 '결정적 순간'을 찾아 여행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첫 사진집 제목마저 <결정적 순간>이다. 이 책 <영혼의 시선>에는 기대와는 달리 그의 사진이 많이 실려 있지 않다. 대신 그가 살면서 느꼈던 삶의 단상들이 몇몇 대표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대단한 사진기법에 대한 강의나 대가의 일갈이 담겨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책의 후반부에 실린 동료 사진가에 대한 그의 짤막한 인물평을 읽으며 "내가 이런 시시껄렁한 얘길 읽으려고 비싼 돈을 들인 게 아냐!"라고 화를 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그의 글과 함께 실려 있는 직접 촬영한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브레송이 글로 묘사한 인물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다시 글의 첫 머리로 돌아와 첫 장(15P)을 다시 읽기 바란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을 좇았던 사진의 대가는 사진 촬영에 대한 '결정적 문장'을 남겨 놓은 것이다. 몇 번이고 읽어 보게 되는 문장이다. 사진이란, 결국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이 결정적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소설가에게도 결국 '결정적 한 권의 작품'이 남을  뿐이다. '결정적 작품'을 위해 나는 오늘도 마음을 조준선 위에 올려 놓는다. 오른손 손가락은 가만히 셔터에 올려 둔다. 왼손은 거들 뿐. 


2011. 5.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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