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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리뷰

F. 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멀고느린구름 2011. 5. 9. 20:36
위대한 개츠비 (반양장) - 8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문학동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는 2005년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 중 한 편이다. 제목만큼이나 위대한 이 작품을 읽는 데 나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처음 이 책을 펼쳐 들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어느 여름 구립 도서관이였다. 중학생들을 위해 시행하는 방학 독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무언가 위대한 인물의 전기적인 내용이지 않을까 싶어 제목만 보고 꺼내 들었으나, 불과 몇 분만에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뒤 내가 선택한 것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었다. 나는 방학내내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만 읽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 일이 생겼다.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할 수 없이 펼쳐 들었다. 그러나 곧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문제는 번역이었다. 뚝뚝 끊겨버리는 흐름과 무언가 어색한 주인공들의 대화에 실망한 것이다. 도무지 읽기를 지속할 수 없어 포기. 결국 독후감은 백과사전에 나온 줄거리를 토대로 멋대로 상상해서 써버렸다.

  서점에 갈 때마다 <위대한 개츠비>는 눈에 밟혔다.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낙원처럼 내게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김영하씨의 번역본이 나왔다. 책의 디자인도 상당히 세련되게 변모했다. 김영하씨라면 신뢰할 수 있겠다 싶어 선뜻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질려 덮어두기를 수차례. 그러던 끝에 가까스로 30페이지 가량을 읽어 내려갔는데, 묘하게도 그때부터 작품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30페이지를 넘긴 그날 새벽에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할렐루야! 드디어 신세계에 당도했도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이 개츠비'라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사회적 맥락과 연계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선은 '연애소설'로서 읽는 것이 좋겠다. 192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것이 격변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과 상대적으로 가난해져버린 사람. 혹은 기존의 부를 유지하는 사람과 기존의 것을 잃어버린 사람. 꿈을 꾸려는 사람과 도무지 꿈꿀 것이 없어진 사람. 소설 속에서는 양 극단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대비된다. 

  1925년에 살았던 서구 젊은이들의 꿈이란 결국 '아메리칸 드림'으로 귀결 된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가장 심플하게 표현하자면 '부자가 되는 꿈'이다. 소유하고 싶은 것을 끝끝내 소유하고 말리라는 욕망의 실현이다. 주인공 닉 캐러웨이와 제이 개츠비, 데이지와 그의 남편 톰 뷰캐넌, 그리고 여성 골프 챔피언 조던 베이커. 이 젊은이들은 모두 구 세계(유럽)로부터 신 세계(아메리카)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온 청춘들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꿈꾸는가. 피츠 제럴드는 '개츠비'의 낭만적 사랑을 통해 우리가 좇는 것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의 실체를 비춘다. 

  인간은 대개 자기 자신이 욕망하는 것의 진실을 모른 채 추구한다. 인간이 '추구' 하는 것은 자신이 '가져 보지 못한 것' 이거나 '자신이 되어보지 못한 것', 혹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만 욕망을 갖는다. 기대는 언제나 상상과 허구의 여백이 남아 있을 경우에만 촉발된다. 우리는 완벽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항상 늘 그러할 것이므로.

  청춘은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고, 욕망한다. 사랑을 원하며, 맹목적으로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우리가 알지 못하던 것에 대해 알게 된 순간 일정 부분 실망하고 한 걸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그 한 발 물러선 지점에서 청춘의 종막을 고한다. 청춘에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청춘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다. 물리적인 나이와 상관 없이, 그남과 그녀에게 '꿈'이 있다면, '욕망'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사랑'에 기대한다면 그들은 아직 청춘을 지나지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위대한' 까닭은 마주한 진실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다시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점이다.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청춘'을 지키고자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의 그런 순수한 꿈에 마음을 열고 그의 편이 되어준다. 작품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인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당신은 지금 거센 물결에 밀려 한 걸음 물러 섰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머물러도 좋다. 하지만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면... 당신의 '청춘'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잃어버린 꿈도 뜨겁던 사랑도 다시 깨어날 것을 믿는다. 


2011. 5. 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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