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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리뷰

호란 - 호란의 다카포

멀고느린구름 2011. 3. 2. 06:12

호란의다카포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 독서 > 독서에세이
지은이 호란 (마음산책,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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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점수: ♥♥♥

 

    "나는 가끔, 내가 뿔이 보이지 않는 유니콘을 데리고 동물원 장사를 꾸려야 하는 마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이 유니콘은 진짜 유니콘이고 순수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도, 남들 눈에 뿔이 보이지 않아서야 사기꾼 아니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되기 딱 좋다. 사기꾼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가짜 뿔을 멋지게 달아줘야 한다. 그러면 내 눈에는 유니콘이 아니라 뿔 두 개 달린 괴물이 보이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다시 또 입장료를 내고 기꺼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보통 말을 데려다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보다는, 이쪽이 그나마 낫다는 반쪽짜리 프라이드 같은 것도 생길지 모른다." 144p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냐고 묻는다면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여러가지 대답 중 하나로 나는 다음과 같은 답안을 꼽는다. 자기가 지금 서 있는 곳을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자연스레 표현하려는 욕구를 지니는 것.

 

  예술이란 결국 예술가의 내면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학습된 기술을 펼쳐보이는 정도로는 예술이라 이름하기 어렵다. 창작이란 세상에 전혀 없는 그 무엇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창조되어진 '나'라는 개체를 타인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형태로 다양하게 분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오래된 변신에의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클래지콰이의 호란은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가진 신인 가수였고, 다음에는 꽤 괜찮은 가사를 써내는 작사가였으며, 뒤에는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자 진행자였다.  그리고 이제 작가로서의 호란이 더 추가되었다.

 

  호란은 변신에의 욕망에 충실한 예술가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팜므파탈이니, 섹시하고 지적인 이미지니 하는 한국에서 멋진 여성을 지칭하는 낡은 표현들로 호란의 매력을 설명하곤 한다. 허나 나는 호란의 매력은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이상은이나, 장필순, 김윤아 등에게서도 감지되는 예술가로서의 아우라 라고 여긴다.

 

  '밑줄 긋는 책' 이란 글에서 호란은 책에 메모를 하거나 밑줄을 긋는 행위를 싫어한다고 밝히고 있다. 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도 동지다. 내가 아는 한 친구의 책을 보면 메모와 밑줄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나는 그 친구의 취향을 존중할 수는 있으나 공감할 수는 없다. 책에 필기구를 대는 행위가 내게는 왠지 책을 쓴 작가의 얼굴에 낙서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페이지의 한 장을 접거나 책으로 벌레를 잡는 행위 등도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종종 내 서가에 꽂힌 책들의 보존 상태를 보고 감탄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로서는 그저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 그런 반응이 되려 의아하다.

 

  책의 첫 부분부터 이렇게 동지로서의 우애를 다지고 시작해서인지 뒤이어 이어지는 호란의 서평들은 오래된 벗의 편지처럼 흐뭇하게 읽혀졌다. 아쉽게도 서로의 취향이 다른 탓인지 그가 서평을 쓴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은 없었지만 그의 서평은 퍽 매력적이었다.  <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고슴도치의 우아함>, <유지니아> 등은 그의 서평을 읽고 난 후 나의 구매도서 목록에 추가한 책들이다. 그의 서평은 틀에 박힌 형식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좋았다. 책이 말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유유하게 이어내는데 막힘이 없다. 간간히 등장하는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인간 비평은 즐겁고, 여성문제에 대한 건강한 시각도 반갑다. 서평 뒤에 이어지는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편안한 문체 덕분인지 그냥 이웃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주변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 같다. 처음 기타를 사려고 낙원상가를 돌아다닌 일이나, 영어로 가이드 가사를 썼다가 우리글로 바꾸려니 곤욕이었다는 일화, 사랑의 주제곡이 존 레논의 'oh my love' 인 것 등은 나의 경험과도 일치하는 것들이라 글을 읽어가는 내내 슬몃슬몃 미소가 지어졌다.

 

  

  요즈음 유명인이 낸 책들의 실제 필자가 달랐던 사건들이 몇 차례 연달아 있어 호란의 책도 의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허나 이제 나는 내 안목을 믿으련다. 내가 본 호란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쉬이 져버릴 사람은 아니다. 클래지콰이의 노래에서 그가 쓴 가사에는 문학적 아름다움이 분명 있었다. 나는 그가 4월에 소개될 그의 새로운 밴드 '이바디'로 사람들의 의심의 눈길을 사랑의 눈길로 바꿔버릴 것이라 믿는다. 같은 시대를 살아갈 예술가 동지로서 그에게 끈끈한 우정의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도 꾸준히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음악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시길!  머지 않아 호란이 내가 좋아하는 대한민국 5대 여성 뮤지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08. 3/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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