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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새해 아침

멀고느린구름 2021. 1. 1. 08:01

2021년의 첫 글을 써볼까나 하는 비장한 각오로 자리에 앉았는데,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어제의 아침과 오늘의 아침은 물론 다른 아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떠오르는 태양의 이마 위에 2021이라고 숫자가 써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심드렁한 나라도 떠들석한 세상의 분위기에 하루 정도 동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새해를 맞아 산에 올랐다. 올해에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바다를 보러 갈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강원도 일대 바다를 모두 통제한다는 기사를 본 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디어 자체를 까먹고 말았다. 덕분에 아주 평범하게 구름정원에 앉아서 언제나처럼 새벽 어스름을 헤치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 걸 커피와 함께 감상 중이다. 음악은 중세시대에 유행했다는 악기 류트의 연주 음악이 흐르고 있다. 

 

작년 상반기는 코로나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풍부했는데, 역시 코로나 탓에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결국 제대로 작품을 쓰지 못했다. 하반기에는 갑작스레 맡게 된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말았다. <오리의 여행 2>를 어떻게든 발간한 것이 그나마의 위로다. 발표하지 않은 단편도 두 편 정도 초고를 완성하기는 했다. 그래도 작품 활동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해다. 

 

올해부터는 괘씸한 브런치를 과감히 팽하고, 다른 매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 터전을 닦아볼까 싶다. 새로운 장편 연재와 연작소설집 상반기 내 발간이 목표라면 목표다. 몇 년 전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부채도 상반기 내에 모두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구름정원 뜰에 드디어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 앉았다. 처음이었다. 인조잔디가 햇볕에 조금 변색이 되어 자연스러워지니, 새들도 깜박 속은 모양이다. 적회색의 작은 새는 내가 만든 마루에 앉아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녀 보다가 이내 포르르 날아갔다. 심심할 때 다시 찾아와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이 아직 어둑하던 하늘이 연푸른빛으로 개었다. 까치들이 들뜬 울음을 울며 지붕 위를 지난다. 물고기처럼 생긴 구름들의 배 부분이 밝아오는 태양빛을 받아 연한 황금빛이다. 황금 물고기들이 순해 보이는 하늘 속을 헤엄쳐 까마득한 곳으로 가고 있다. 새해 아침이다. 모두에게 축복과 건강이 깃들기를.

 

2021. 1. 1. 멀고느린구름. 

 

(c) 멀고느린구름. contax G 2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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