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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1년은 어디로

멀고느린구름 2020. 6. 29. 19:10

1년은 어디로 갔을까. 이불도 없는 빈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솜이 빠져나간 베개처럼 무용하게 흘려보낸 1년이었다. 하루하루 멍하니 일터의 자리를 지키고, 집에 돌아와 움츠러드는 것만을 무한히 반복하며 살다가 보니, 갑자기 코로나가 왔고, 휴직과 해고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해변에서 문득 잠들었다가 갑자기 밀려온 해일에 아주 뜻밖의 섬으로 밀려나버린 후 깨어난 기분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인생에 크게 지쳐버린 것도 같고, 이제 다시 시작인 것도 같다. 꼭 김광석의 노래 같다. 문 밖의 하늘은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아무런 위로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머리 속을 파고들어가 작은 점의 유리조각이 된 슬픔으로부터 쓸쓸함은 생산된다. 1년이 지났지만 이별은 여전히 어제의 일만 같고, 오늘 또 다시 긴 이별이 시작된 것만 같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스스로를 궁지에 모는 것을 즐기는 타입의 인간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다. 일로 쓰는 것은 그다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래야만 일로도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 일과 글을 분리하지 않으면 글을 지킬 수 없다. 나는 언제까지 글을 쓰게 될까. 모르겠다. 그래도 죽기 직전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있다면 그 순간 사랑하는 이에게 글을 쓸 것이 틀림 없다. 사랑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이별의 그림자는 먹먹한 우기의 저녁 하늘과 닮은 청회색이다. 철제의 까만 기와 지붕 위로 울음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나는 서둘러 이 방을 떠날 것이고, 녹색의 계단을 내려가 처량한 음악 속에 숨을 것이다. 당신과 적막한 춤을 추며 무수한 과거 속을 거닐 것이다. 나는 흰색의 경차를 운전하고, 우리는 6월의 눈이 내리는 것을 함께 보다가 미소를 남기고 헤어질 것이다. 

 

이불도 없는 빈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벌써 언젠가의 나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살아 있는 것인지 아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 있다면 나에게로 와도 좋다. 그나저나 1년은 어디로 갔을까. 이 글처럼 수필과 소설의 틈새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걸까. 현실과 환상의 골짜기 속으로 뛰어내린 것일까. 떠났던 여행자를 실은 비행기가 물먹은 구름 사이로 착륙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생각과 시각, 바람과 식은 커피 어디에도 우리는 착륙할 수 없었다. 나의 글은 그저 흘려듣기 좋을 몇 소절의 음악이 되었으면 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2020. 6.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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