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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변명들

멀고느린구름 2019. 10. 13. 01:07

변명들이 늘어간다.

 

왜 아직 등단을 하지 못했나? 왜 아직 유명한 인물이 되지 못했나? 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나? 왜 아직 재산도 갖추지 못했나? 왜 아직 성격이 그 모앙인가? 

 

세상은 (그리고 나 자신은) '왜 아직 -' 으로 시작되는 수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종종 던진다. 그럴 때면 무엇 하나도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러쿵저러쿵 정신승리를 위한 변명들을 뒤적거리게 된다.

 

나를 알아보는 심사위원이 없어서요, 세상 사람들의 취향과 내 취향이 달라서요, 돈도 없고 성격도 나빠서요,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요, 천성이 그 모양이라서요.

 

라고 세상의 질문에는 대충 변명을 하고 돌아서지만, 이따금 나 자신이 스스로 던지는 똑같은 질문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모두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인생을 크게 그르친 것 같아서 위축되는 날이 점점 늘어간다. 긍정의 말들로 가득 찬 자기계발서는 늘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말하느라, 지금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진짜가 아니라고 나약한 사람의 마음을 긁어낸다. 미래에 조명을 비출 수록, 현재는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모처럼 투명한 가을 햇살이 가득했던 오후의 거리를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불행과 평범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해피엔딩 이후의 후속편을 만든다고 해도, 분명 영화의 플롯은 똑같이 짜여질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행복이 고조되는 마지막 한 순간에 있겠지만, 영화의 아름다움은 나머지 모든 부분이 자아낸다.

 

우리의 삶 역시, 우리가 이겨 나가고 있는 불행과 평범한 하루의 모습에 의해 그 전반의 아름다움이 결정될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불행한가, 어떤 모습으로 평범한가. 당장 꿈에 그리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지만, 평범한 하루의 표정을 바꿀 수는 있다. 불행 속에서도 내가 걸어가는 방향 정도는 조금 움직여 볼 수 있다. 

 

혼자 있을 때의 표정을 잘 안다. 덕분에 미간의 주름이 짙어지고 있다. 오늘 투명한 거리를 뚜벅뚜벅 걸으며 아무 일 없이 미소를 지어봤다. 아직 성에 차지는 않지만, 나는 충분히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던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고, 예쁜 나만의 공간이 있고, 새로운 책과 음악을 접하고, 무례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다. 힘겹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다움을 지켜내고 있다.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이만큼 살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이것은 또 하나의 변명이다. 그런데 그러면 뭐 어떤가.

 

20대의 나는 훨씬 엉망진창이었고, 훨씬 더 숱한 변명들을 했었는데... 그때 내가 지껄였던 변명들따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번에 멋지게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고 단 1보라도 꿈의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만인 삶이다.

 

매달 월급의 10%를 구름정원 인테리어 비용으로 쓰고 있다. 조금 비싼 자작나무 합판으로 다락방을 꾸미고 있다. 오늘 내 다락방이 좀 더 예뻐졌다. 기쁜 일이다. 몇 해 동안 너무 큰 고난을 겪은 탓에 소소한 기쁨의 귀함을 잊고 살았다. 오늘은, 그리고 지금은 기쁘다. 당신에게도 좋은 밤이길. 

 

2019. 10. 1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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