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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아무래도

멀고느린구름 2019. 9. 24. 08:23

웹에 쓰는 글은 아무 거라도 이미지를 붙여두지 않으면 거의 읽히지 않는다. 덕분에 요즘에 내가 이곳에 쓰는 시시껄렁한 에세이들도 거의 읽히지 않고 있다. 조회수가 10-30 사이다. 일부러 그러는 중이다. 꽤 오랜 세월 읽혀지기 위한 글을 연구해왔다.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고, 검색어에 잡힐 법한 단어들을 제목에 넣고, 화제가 되는 쟁점에 뛰어들어 글을 쓰곤 했었다. 글을 웹식으로 치장하는 일에 이제 제법 능통해졌다. 

 

그러다 작년 무렵부터 글이 글 외의 요소로 읽히는 것에 좀 정이 떨어졌다. 잘 치장한 글이 역시 잘 읽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기쁘지 않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온갖 사람들이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떠드는 것에도 질려버렸다. 글이란, '잘 읽히면' 그만인 것일까. 잘 읽히는 글을 쓰면 글을 잘 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세상에는 무색무취의 잘 읽히는 글들이 너무 많아져 버려서 글이란 게 본래 그렇게 무색무취의 것인가 하고 여겨질 정도가 되어버린 것 같다. 마치, 유력 기획사의 주류 음악이 그 표준이 되어버린 케이팝처럼, 케이글이란 장르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얼마 전까지 잘 읽히는 글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다닌 내가 쓸 말은 아니다.

 

처음, 이 웹 공간을 열었을 때 하루 방문자는 다섯 명 남짓이었다. 나를 감시하고 있던 어떤 한 사람이 하루에 다섯 번을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한 사람과 다섯 사람 사이의 어떤 사람을 향해서 글을 썼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지금 읽어보면 그다지 재미 없는 서평 같은 것들을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올렸을까. 아마도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내향적 성격의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방향 없이 글을 시작했더니, 오늘 아침 내 글은 한강의 중상류 쯤에 여기가 어디지 하며 둥둥 떠있는 것 같다. 노를 젓는 것에도 흥미가 떨어져 놓아버리고 나니 배는 가는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닌 상태다. 처음 글을 써볼까 하고 생각했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내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머물고 있던 오리빌라 인근 까페에서 대낮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즈음 이사를 감행했다.

이사를 온 뒤 그럭저럭 정착이 되어갈 즈음, 새 집인 구름정원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강에 20대 두 사람이 투신자살을 했다.

아, 어째서 나는 이사를 한 거지?

 

이런 주제였는데, 엉뚱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 전부터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긴 했지만, 이렇게 시시껄렁하게 쓰려고 한 건 아니었다. 살인사건이나 누군가의 자살에 대해서도 이런 자리에서 얘기할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흔들리고 있는 요즈음의 내가 힘을 내어 살아가려면 아무런 글이라도 쓰는 편이 좋다. 이렇게 잘 읽히지 않는 글이라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읽어주고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 

 

집필실을 만들고 나면, 소설을 성실히 쓰겠다고 선언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남북공동선언문도 20%밖에 지키지 못했다고 하니, 스스로에게 너그러움을 발휘해보자. <오리의 여행 2>를 내겠다는 것도, 올해 안에 소설책을 펴내겠다는 것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것이 이렇게 많아서야... 종종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아무래도 그 생각은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2019. 9. 2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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