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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만
슬픈 예감은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특히 소설이나 드라마의 초반부를 볼 때 느껴지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들이 사람의 인생을 유난히 닮아 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난다. 슬픈 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슬픈 예감들만이 사는 별이 있다. 그 별에는 예감의 빛들이 살고 있다. 그중 유난히 강렬하고 파장이 긴 빛이 바로 슬픈 예감인 것이다. 희소식의 예감은 그보다 좀 빛이 약하다. 복권 당첨의 예감은 더욱 더 약할 것이다.(그 별을 찾아가서 이 그룹에게 빛 에너지 방출 특훈이라도 시켜야 할 것 같다.) 그 탓에 지구에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도달하는 것이 바로 슬픈 예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슬픈 예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예감을 각자의 순간에 마주친다. 어떤 이는 좀 더 옛날에, 그리고 어떤 이는 이제서야. 슬픈 예감을 맞이하는 시기와 맞이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슬픔은 배가 되기도 하고, 반감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슬픔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뭐랄까 음악과 같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색도, 냄새도, 맛도 바뀌는 그런 것이다. 슬픔은 취향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런 생각에 도달한다. 사람은 그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살아갈 뿐이고, 그 취향이라는 것이 모든 순간들의 의미를 결정한다. 강약, 속도, 진폭, 콘트라스트, 비지엠(BGM)까지. 인생이라는 것은 '이야기'일까, '사람의 감각'인 것일까.
얼마 전 기사에서 소설가 황석영 선생께서 요즘 소설가들이 '서사'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미문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되새겨 보아야 할 말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옛 세대의 소설가라고 하여 특별히 '서사'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어느 쪽이 더 두드러져 보이느냐의 차이는 아닐까. 우리 시대의 소설가들은 어쩌면 '옛 이야기'와 싸우고 있다. '옛 이야기'가 가진 추억 보정 및 권위와 맞서 이겨낼 '새로운 이야기'는 아마도 환상 문학이나 과학 문학 쪽에 더 강점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쪽은 새로운 소재들이 계속 생겨나니까.(물론, 환상 문학의 신소재라는 것은 국내에 국한된 것이다. 순전히 옛 환상문학이 덜 소개된 덕분이다.)
하지만, 로맨스나 작가주의 소설에 와서는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 그냥 우리가 항상 살아가는 그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혁명이나 전쟁을 겪지 않고 있는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나마 특별할 수 있는 요소는 '사람의 감각'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슬픈 예감>에서 슬픈 예감은 무척 빨리 내 앞에 당도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만, 이야기는 그저 정해진 수순을 밟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이야 대단한 모험이었어라고 기지개를 켤 수도 있지만, 하아... 하며 그런데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게 되는 것도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대부분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나는 <슬픈 예감>을 덮으며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멍하니 어두운 창을 바라보며 그 밖에 서 있을 밤을 생각했다. 슬픈 예감의 별에서 한 줄기 빛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미래의 언젠가 분명 슬픈 일이 하나 둘 생기겠지.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겠지만, 뭐 어때. 그럼에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와도, 결국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날 사실은 내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나레디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2015. 9.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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