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

RIGHT NOW, WRONG THEN 
7.5
감독
홍상수
출연
정재영, 김민희, 윤여정, 기주봉, 최화정
정보
드라마 | 한국 | 121 분 | 2015-09-24
글쓴이 평점  




정말 지금이 꼭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종종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과거를 반추하며 성장해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때의 일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반성한 사람이라면 지금에 와서는 그때와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은 맞을까? 


애석하게도 알 수가 없다. 어째서냐면 우리의 지금은 다시 또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불멸의 명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간은 어제가 되고, 우리는 어제를 추억하고 반성하니까. 


과거로의 시간여행자는 달리 말하자면 반성자다. 과거의 어떤 일을 반성하게 된 인간만이 과거로 돌아가 어떤 것을 고쳐놓고 싶어한다. 관광목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과거행 타임머신을 만드는 과학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 영화 <백투더퓨쳐>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순수한 동기로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이것을 이용하는 것은 반성자 마티다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주인공은 놀랍게도 타임머신 없이도 시간 여행을 한다. 두 개의 다른 세계를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문학적 편집이다. 


* 아래 문단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안과 B안이 있다. A와 B의 주인공은 모두 여행지에서 만난 예쁜 여자와 자는 것에 실패한다. A의 주인공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작업에 들어가 보는 타입이다. A안에서 주인공은 두 여자에게 작업을 걸어 본다. 좀 더 예쁘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두 번째 여자에게 총력을 기울여 정열적으로 구애를 하지만 여자의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주인공은 여행지를 떠나게 된다. B안의 주인공은 한 여자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열적이기 보다는 쿨하게, 솔직담백하게 작업을 걸어 보기로 한다. 어째서인지 A안의 주인공으로부터 조언을 듣기라도 한 듯이. B안의 주인공은 대단한 인내심으로 거의 성공의 문턱에 도달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참아내지 못하고 주인공의 지인들에게 오명을 남긴다. B의 예쁜 여자는 주인공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기로 한다. 


주인공은 결국 예쁜 여자와 잠자는 것에 실패하고 말지만 그래도 여자에게 자신에 대한 추억을 남기는 B안에 만족하기로 한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지금이란 결국 이 정도로 한 발자국 내딛는 일이 아닐까. 완전한 정답에 우리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망하던 것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에 틀렸던 것을, 지금은 맞히기 위해 애쓴다. 정말 지금이 꼭 맞지 않더라도, 애썼다는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상처를 추억으로 바꾸는 정도라도... 그 걸음들이 모여서 언젠가 우리는 사랑 앞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배우자가 있는 상태여서는 곤란하지만 말이다. 비단 사랑의 일뿐일까. 우리가 품은 그 모든 꿈들에 이르는 길도 비슷할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리고 결국 지금도 틀리고, 훗날은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삶이라면 나쁘지 않겠다. 그런 삶들이 모여 만드는 역사라면 또한 나쁘지 않겠지. 


요즘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고. 반성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간여행자는 어떤 이들일까. 아마도 시간과 함께 성장하지 못한 이들일 것이다. 강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어느 한 곳에 멈추면, 다른 지류에서 흘러온 강물을 껴안지 못한다. 영원히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2015. 10. 18. 멀고느린구름.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