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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쓸모
청춘은 도무지 쓸모가 없다. 국어사전 검색창에 '쓸모'라고 입력하면 '쓸 만한 가치', '쓰이게 될 분야나 부문'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청춘은 아직 그 사람의 가치가 온전히 정해지지 않은 시기이기에 쓸모가 없다. 특히 오늘날의 청춘은 쓰이게 될 분야나 부문이 뚜렷하지 않거나 있으나 마나한 자리가 대부분이어서 쓸모가 없다. 이래저래 청춘은 참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청춘의 쓸모가 분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가령,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거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의 투사가 되었어야 할 시절, 노동 탄압에 항거하여 정부를 향해 짱돌과 화염병을 날려야 했을 시절에는 청춘의 분명한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결국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기획하는 것은 적어도 30대 중후반을 넘어서 어느 정도 사회적 입지가 다져진 이들의 몫이었다. 외국의 사례에서 앙시엥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것도 당통, 로베스 피에르 등 30대인 것을 보면 20대 청춘은 참 역사적으로도 별 쓸모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은 이 가장 쓸모 없었던 시기를 가장 그리워하며 산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라고 달빛을 보며 중얼거리게 된다. 청춘은 쓸모가 없기에 가장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게 되는 시절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싯구는 청춘의 자화상을 가장 선명히 보여준다. 청춘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한 없이 괴로워질 수 있는 때이다. 모든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번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존재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청춘은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있는 무용(無用)한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문열 소설가가 바로 그 청춘의 한 시기에 쓴 <젊은날의 초상>은 그 쓸모 없는 시절의 초상화다. <젊은날의 초상>이 1쇄를 찍은 날은 1981년 11월 30일이다. 이문열 소설가가 1948년생이니 그의 나이 33세에 쓴 소설이다. 이 장편은 세 편의 단편을 연작으로 묶어놓은 연작소설이다. 가장 뒤에 있는 '그해 겨울'이 가장 이른 1979년에 발표되었다. '하구'와 '우리 기쁜 젊은날'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쓰여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은 내가 태어난 시기와 함께 태어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나이는 만 35세로 이문열 소설가가 이 작품을 출간한 시기의 나이와 비슷하다. 어쩌면 이문열 소설가가 막 작품을 탈고하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본 느낌과 지금의 내 관점이 다소 비슷하지 않을까.
<젊은날의 초상>의 주인공은 참 쓸모가 없는 주인공이다. '하구'에서는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형네 집에 빌붙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고, '우리 기쁜 젊은날'에는 체제에도 반체제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채 그저 지적 허영에 사로잡혀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는 대학생이다. '그해 겨울'에서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궁벽한 산골에서 머슴살이 같은 것을 하다 동해의 바닷가를 찾아가는 부랑아다. 이 주인공이 뱉어내는 말들은 일견 의미 심장해보이지만 사람이나 세상을 전혀 흔들지 못하는 공허한 말뿐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여성에 대한 편견,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감정적 반감,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감 등등 그다지 본받고 싶지 않은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다. 1970년, 1980년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서의 대학생은 이 주인공과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이 주인공은 일괄적 그 거대 담론에 대한 저항감으로 무장해 있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고, 우리 문학계에서 거장의 자리에 올라 있는 소설가가 젊은 시절에 써내려간 것을 현재의 그에게 묻는 일은 좀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에는 좀 더 좁은 식견에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실언을 할 수도 있으며, 지금과는 다른 생각 다른 주장을 했을 수도 있다.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동일한 사고나 정체성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고,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소신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그것이 꼭 언제나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가령, 히틀러는 매우 소신을 지킨 사람 아닌가. 오히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음에 따라 시야가 넒어지고, 좀 더 신중한 사색 끝에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변화하는 것이 더 아름다워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 잔뜩 밑밥을 깔아놓는 이유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참으로 쓸모 없고, 형편 없는 젊은이라는 것을 좀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어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당시 30대의 이문열 소설가가 불러낸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꼭 현재의 이문열 소설가가 여전히 동일한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말을 해두고 싶은 거다.)
<젊은날의 초상>의 주인공은 사실 별로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없다가 대학생이 된 이후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길에 올라서는 이다. 행동을 하기 보다는 사변적인 세계, 논리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부류의 친구들만을 만나 교류한다. 자신의 가난에 대해 자격지심이 심대하다. 헌데 스스로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기보다는 동경하는 여성 주인공의 부유함을 '천박함'이라는 이름으로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신의 정신적 우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정신적 우위는 서울역에서 앵벌이나 신문팔이를 하며 차곡차곡 경제적 성과를 쌓아나가는 어린 소년의 순수한 도덕성 앞에서 무너질 정도로 허약한 지위다.
쉬운 말로 '자존심 하나 빼면 시체'인 주인공이다. 솔직히 말해 이 주인공은 지난 날의 나와 상당히 닮았다. 이문열 소설가가 <젊은날의 초상>을 쓰며 어떤 메시지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청춘의 쓸모없음', 혹은 '청춘의 형편없음'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점에서는 매우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이 주인공의 생각이나 주장에 현재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과는 별도로, 나는 이 주인공의 쓸모없음, 형편없음에 마음이 이끌린다. "아, 그래도 나는 이 정도로 형편 없지는 않았어" 라고 하는 상대적 우월감도 없잖아 있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쓸모 없는 우월감에 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등의 성장 소설은 독자를 분명히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걸어가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은 있는 그대로의 방황을 드러낼 뿐,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끝내 답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쪽은 헤세의 작품 쪽이지만, 보다 현실에 가까운 쪽은 어쩌면 이문열의 작품 쪽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청춘에는 늘 답이 없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춘들은 지나치게 빨리 자신의 쓸모를 구하려는 조급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실제로는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에도 튼튼해 보이는 자리가 나면 일단 우르르 몰려들어 자리를 차지하고 보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불안한 사회를 만들고 청춘들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전 세대의 과오다. 우리는 피해자로서 가해자인 전 세대에게 그 과오를 깨닫고 시정하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는 인간이라는 속성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결국, 변화는 문제를 감지한 사람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다.
문제를 감지하는 것은 결국 그 문제 속에서 삶을 위협 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문제를 민감하게 감지하기 위해서는 좀 쓸모가 없어야 한다.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번민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부딪치고, 깨지면서도 저항하고, 자신의 진정한 쓸모를 찾아 번민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섣부르게 청춘의 쓸모를 구하려한 인간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가장 높은 지점은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가 아닐까. 오늘날 사회 현실에 책임이 있는 전 세대의 어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들 자신은 그 아픔 속으로 밀고 들어가 아픔을 이겨내며 우리 자신들의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청춘의 쓸모다.
2015. 5.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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