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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호모 메테오로스

멀고느린구름 2013. 5. 13. 07:50




 난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 눈이 달렸어. 그러니까 남들처럼 얼굴에 눈이 달린 게 아니라 정수리의 검은 머리칼 숲 사이에 비밀의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두 개가 고여 있지. 의사는 어머니에게 자궁향수증후군이라고 했어.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태어나면서도 어머니의 자궁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눈이 거기에 붙어버린 거라고.

 

  아무래도 좋아. 난 하늘을 보며 걷는 게 무척 좋거든. 하늘은 신기해. 정지해 있는 경우가 없지. 무언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해. 그리고 놀랍도록 아름답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라는 시가 유행해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불편하게 목을 뒤로 젖혀야 할 때도 나는 여유롭게 유행에 동참할 수 있었어.

 

  세상에 하늘로 눈이 달린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에 넌 학교에 갈 수 없다고 아버지가 말하던 날 나는 옥상에 올라 8시간 동안 하늘을 보았지. 괜찮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야.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서 나는 키가 점점 자랐어. 학교에 수용되어 있지 않으면 이상한 나이가 되었지. 그러나 내 눈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달려 있었고 아직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다는 뉴스는 들려오지 않았어. 괜찮았어 난 괜찮았어. 왜냐하면 하늘이야 말로 나의 학교였으니까. 심심하면 나를 향해 비명을 질러댈 사람들 속에서 굳이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잖아. 하늘은 저렇게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하늘을 사랑하는 걸. 구름은 또 얼마나 다정한지. 비는 또 얼마나 촉촉하게 아름다운지. 별은 어찌나 그립게 빛나는지.

 

  학교에는 비록 가지 못했어도 난 책 읽는 법을 배웠어. 하루 하루 하늘과 책을 번갈아 가며 보았지. 나는 특히 하늘에 관한 책을 좋아했어. 그 중에서도 고대 천공인의 전설에 관한 책을 사랑했지. 아주 아주 오래전 몇 십 만년도 더 전의 이야기야. 지상이 아직 짐승들의 낙원일 때 지적인 생명체는 하늘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 그들의 등에는 하얀 날개가 달려 있었고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해 나 있었어. 책에 그려진 삽화를 보면 그들은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았어. 흔히 생각하는 천사 같은 부류와는 다른 좀 더 새에 가까운 형태의 생명체였지. 그들은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에게 호모 메테오로스라 라고 불리워져. 내가 열 세 살 때인가 우연히 천공인에 관한 책을 보다가 그들의 후예가 세운 수도원을 본 적이 있어.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유유하고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수도원. 메테오라. 메테오라 수도원은 호모 메테오로스 인류의 후예가 지은 것이라고 생각해 난. 어쩌면 그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난 그쪽 학교에는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 날부터 난 매일 밤 메테오라 수도원에 있는 내 모습을 꿈꿔. 밤이면 밤마다 나는 고대의 천공인이 되어 하늘을 날아. 달빛이 가리켜주는 길을 따라 지구를 여행하지. 까만 숲 사이를 날며 잠자는 새들을 깨우기도 하고,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며 하얀 고래들을 만나기도 해. 그러다가 내 흰 날개가 지치면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내려앉는 거야. 그곳엔 언제나 포근한 바람이 불지. 초록빛 긴 머리칼을 가지고 눈이 하늘로 달린 한 여인이 걸어나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 그 사람이 나의 진짜 엄마야. 나는 자궁 속에서 진짜 엄마와 함께 있었어. 그런데 왜 나를 이 지상에 떨어뜨린 걸까. 왜 나는 계속 천공인들 사이에서 살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런 의문이 드는 꿈을 꿔. 그런 꿈을 매일 꿔. 그러면서 나는 어느 새 스무 살이 되었어.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고 나도 누구와도 말할 수 없어. 나는 모국어를 버리고 천공어를 쓰기로 마음 먹었거든. 사람들은 나의 천공어를 알아듣지 못하지.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난 이 지구의 사람이 아닌 걸. 나는 천공인의 자식이고, 하늘의 학교를 다닌 천공인이야.

 

  아,그리스...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나는 드디어 가기로 결심했어. 천공인의 날개는 대개 10세 전후로 돋아나기 시작해서 20세가 되면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져. 누구도 모르게 옷 속에 감춰두고 있지만 천공인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던 다음 날 내 몸은 각성을 시작했었고, 아주 작고 여린 날개 한 짝이 조심스레 돋아났었어. 그리고 이제는 드디어 비행을 할 수 있어.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초록빛 긴 머리칼을 가진 엄마가 있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어.

 

  난 지금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어. 친 자식도 아닌 나를 키워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이제는 고생을 그만하셔도 되게 되었다고. 나는 이제 내 힘으로 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지상은 참 아름다웠지만 그것이 내게 허락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고.

 

  난 거리로 나섰어. 오랜만에 지상인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어. 높은 건물들에 하늘은 조각조각으로 쪼개어져 있었어. 바람의 노랫소리는 거리의 소음에 잠식당했지. 요란한 지상인들의 음악 소리, 시끄러운 경적소리, 그놈의 경적소리, 그놈의 경적소리.

 

쾅!

 

  난 지상인의 차에 부딪혀서 하늘로 튀어 올랐어. 아직 꺼내지 못한 내 튼튼한 날개가 옷 속에서 뜨겁게 바둥거렸어. 튀어 오르는 순간 초록빛 하늘이 그 긴 머리칼을 내게 드리운 듯 했었어. 그것을 잡으라는 양. 나는 손을 뻗었지만 이내 검은 건물들이 보였고 그 다음엔 잿빛 도로가 보였지. 나는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정수리부터 떨어졌고 내 머리는 깨어지고 내 눈은 터졌어. 내 날개도 옷 속에서 비밀스런 생애를 마감했어. 죽어서 나는 땅에 갇혔어.

 

  하지만 숨막히는 이 어둠 속에서도 난 여전히 꿈 꿔.

새 하얀 천공인의 나라와 언제나 포근한 바람 부는 메테오라 수도원을.

 

 

 

2008. 4.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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