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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論

교육 - 욕 좀 제대로 하고 삽시다

멀고느린구름 2012. 11. 2. 07:01




욕 좀 제대로 하고 삽시다



  20대 초반이었던 시절, 도올선생님의 도올서원 강좌를 수강하던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선생님께 왜 욕을 그렇게 자주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 곧바로 그 학생에게 욕을 했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언제 욕을 자주했냐! 그 학생은 곧 울먹거리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어서 도올 샘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욕을 자주하지 않는다. 오직 욕이 필요한 상황에만 한다. 욕이 필요한 상황이란, 상대에게 강력한 나의 의사표현을 하기 위한 순간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언어란 지나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거칠게 입을 놀린들 상대가 수신하지 않으면 모든 언어는 무력하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욕은 힘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향하여 구사하는 언어다. 내가 너에게 욕을 할 때는 욕의 날이 서슬퍼렇게 살아 있지만, 니가 나한테 욕을 해봤자 나 정도 되는 사람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근원적으로 욕이란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욕 속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구사하는 자는 없다. 욕에 흔들린다는 것은 상대의 힘에 대한 자신의 무력감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이란 개가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컹컹 짖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행위이다. 


  어린 시절 전학을 6번 다녔다. 한 번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왔다. 언어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욕설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난무했다. 충격적인 것은 전혀 욕을 할 상황이 아닌 데도 아이들이 수시로 씨팔, 개새끼, 개자식, 미친놈, 병신, 머저리 따위의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1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아, 이게 욕이 아니라 그냥 일상어이구나 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다른 지방 친구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것이 비단 부산이라는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초등 3학년 무럽부터 폭발적으로 욕 사용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이 삶으로부터 각종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미 성장했고, 다양한 언어를 습득한 어른에 비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항목이 지극히 적다. 물론, 일부의 어른은 자라서도 아이들의 언어도서관과 비슷한  규모의 크기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대부분 자라나면서 언어도서관도 확장이 되기 마련이다. 쓸 수 있는 언어가 적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슬프면 울어버리고, 기분 나쁘면 짜증을 내고, 화가 나면 욕을 한다. 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욕을 하는가. 당연하다. 욕이 훨씬 더 상대방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욕이 훨씬 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인데 왜 욕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욕이 가장 파워풀한 공격 수단인 이상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욕을 선택한다. 4대 성인의 말씀을 읊어본들 - 4대 성인 중에 욕하지 말라는 말을 강조한 분도 거의 없거니와 - 아이들에게는 무용하다. 우리 아이만은 청결한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싶어요 라는 부모의 바람도 소용이 없다.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욕을 습득한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단을 자기 스스로 습득하는 것은 자연의 본능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연인에서 문명인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문명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욕을 구사하다가는 소위 '교육 받지 못한 아이'로 낙인 찍히기 쉽다. 허나 그 교육 받는다는 의미가 19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처치곤란한 아이를 수용하는 시설'로서의 학교에서 시행되었던 '조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초기의 교육은 명백히 '조련'이었다. 좋은 말을 쓰도록 만들고, 깔끔한 옷차람, 품위 있는 행동을 아이의 몸에 새기는 것이 곧 당시의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의 페해를 바꾸고자 나온 것이 근대의 교육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서머힐의 교육'이었다. 


  본질적으로 말해 어린이들에게 욕을 '절대'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분노해야 할 상황에도 분노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A라는 아이가 2시간 동안 B라는 아이를 놀려댔다. 이 상황에서 A라는 아이가 B라는 아이에게 "얘야 상대를 놀리는 것은 정말 정말 나쁜 짓이란다. 자꾸 그러면 내가 널 전체회의에 고발할 수도 있고, 선생님께 이 상황을 모두 얘기할 수도 있어. 그리고 욕하는 건 네 정서발달에도 좋지 않아. 그러니 날 놀리는 행동을 좀 그만두어 주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상황을 기대한다는 것, 또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그런 아이가 되기 위해서 A라는 아이가 받았어야 할 '조련'을 떠올리면 나는 눈 앞이 캄캄해진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A라는 아이의 그런 '훌륭한' 권고는 B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데 '전혀' 효력이 없다. A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는 이것이다. 


"닥쳐 이 개새끼야!"


B는 곧바로 놀림을 멈출 것이다. 그 뒤는 힘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대로 사그라들 수도 있고, B가 욕으로 받아칠 수도 있고, 이어서 주먹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나는 어린아이가 억지로 억지로 자기의 분노를 꾹꾹 눌러서 참은 후 나중에 수습할 수 없게 곪아터지는 것보다 명쾌하게 표출하고 명백한 상황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서로의 앙금을 깔끔하게 털어버리게 되는 이 후자의 상황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욕은 문제가 없다. 즉, 제대로 써야 할 상황에서 사용된 욕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어의 힘'을 인식한 아이들이 남용한 욕에 관한 것이다. 


  친구들끼리의 합의된 은어로서 사용되는 '욕', 가령 이런 것.


"야 씨발, 존나게 재밌다 이거! 하 씨팔! 장난 아니다."

"야 개새끼야, 니만 쳐먹냐? 나도 한 입만 줘~"


이런 것은 대개 중고등 때의 남자아이들이 사용한다. 자기의 남성성과 힘을 증명하기 위해 언어로서 거친말들을 쓰며 자기 속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나이가 들어가고 실제 사회에 나가게 되면 완벽히 사라진다. 쓰는 자신들도 이건 합의된 친구들끼리만 쓸 수 있는 또래의 말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 없다. 


  또 한 가지는 앞서 말한 '언어의 힘'을 활용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욕'이다. 이건 대체로 자기 힘을 과시하고 상대를 압도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의 아이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상황에서나 욕을 써서 상대를 압도하려 한다. 이런 아이들의 욕은 커서도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이런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욕을 쓰지 말라고 말을  곱게 하라고 해도 먹히지 않는다.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욕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즉, 앞서 도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욕이란 결국 '언어'에 지나지 않고, 언어는 공기를 흔드는 바람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내내 나는 학교 전체의 '은따'로 살았다. 약간 깡패들이 득세하는 학교 상황 덕분에 무지막지한 욕의 집중포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침에 등교해서 듣는 첫 말이 


"야 이 씹새끼야, 어딜 꼬라보냐. 대가리 쳐 깔아라. 뵹신 가난뱅이 새끼."


이런 말이었다. 이런 말을 거의 하루종일 듣고 살았는데 처음에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대적할 힘이 없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랬더니 점점 내게 욕하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네 개도 지나다가 나에게 욕을 지껄일 판국이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 그랬는지 어느날 도서관에 가서 욕의 기원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아이들이 쓰는 욕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등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고 났더니 뭔가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내게 '언어'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라는 인식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었다. 


  이후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은 여전히 욕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이 나하고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맥락도 없고, 쓰는 자신들의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누군가 욕을 하면 "어, 그래. 네 말이 맞지." 하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약이 올라서 길길이 날뛰던 욕쟁이 녀석들이 점점 제 풀에 지쳐갔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난 다음부터는 아무도 내게 욕을 하는 아이가 없었다. 쟤한테는 안 먹혀 라는 소문이 온 학교에 다 난 것이었다. 더 이상 시끄러운 말들이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 번 배운 습성은 이후에도 무척 유용하게 쓰였다. 고등학생 때, 그리고 사회에서 일을 할 때에도 누군가 흥분해서 욕하는 것에 휩쓸려 본 일이 없다. 덕분에 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했으면 큰 일로 번졌을 일들을 지혜롭게 잘 대처했던 적이 많았다. 


  덤으로 이런 힘도 생겼다. 굉장히 침착하게 써야할 상황에 욕을 파워풀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들은 욕이 많은지라 나의 욕 도서관은 엄청난 장서로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내게 욕이란 시시한 언어이기 때문에 잘 쓰지 않지만, 통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힘을 갖는다는 사실도도 잘 알고 있긴 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반의 한 녀석이 한 학기 내내 깐죽거렸다. 옆에서 빈정거리고, 나를 왕자병이라고 - 좀 그랬지만; - 놀리고, 이상한 루머들을 퍼뜨리고 다녔다. 평소에 별로 대응도 안 하고, 조용하고, 욕이라고는 입에 올려본 일도 없는 나라서 상대의 힘을 정확하게 체크할 줄 모르는 그 녀석에게는 내가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기회를 벼르며 기다렸다. 체육시간이었다. 그 아이가 내 체육복에 네임팬으로 엑스를 쳤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녀석이 교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난 체육복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3옥타브로 외쳤다. 


"어떤 씹새끼야!!!!"


그리고 그 다음부터 그녀석은 내 근처에도 잘 오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욕은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늘어나고, 자기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저절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친구들끼리 친근감을 높히기 위해 사용하는 은어로서의 욕은 한 시절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 큰 해악이 되지도 않는다. 


  어린 아이일 수록 자연스러운 욕을 사용하지 말라고 강요하게 되면 아이는 '욕'속에 비밀스런 힘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 속에 강화하게 된다. 그리고 거꾸로 욕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부모 앞에서는 착한 아이처럼 굴다가도 시선에서 벗어난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욕을 애용하게 되고 만다. 욕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되려 욕을 사용하게끔 강화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의 욕을 좀 줄여보고 싶은 바람이 크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백번 효과적이다. 욕이란 게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욕이란 사실 사람들이 그 의미도 정확하게 모르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 뿐이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 자신이 반응하지 않으며 허공에 대고 멍멍 짖는 거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상대에게 욕을 들었을 때 가장 통쾌하게 이기는 법은 '응, 그래'라고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며, 네가 가진 욕의 힘을 가장 강력하게는 법은 평소에는 절대로 욕을 쓰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탁! 쓰면 엄청 세진다는 비법을 전수해주면 대체로 아이들은 욕을 시시하게 여기게 되고 자기도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쓰지 않게 된다. 


  쪼끄만 아이가 벌써 욕을 배우다니! 라고 놀라는 어른이 참 많다. 하지만 모든 언어 중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욕이다. 왜냐하면 욕이 가장 힘을 가진 언어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을 지닌 동물로서의 자연적인 반응이다. 살다보면 욕이 꼭 필요한 순간도 있다. 주먹을 써서 상대에게 상해를 가하고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것보다 통쾌한 욕 한 방으로 해소될 수 있는 상황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욕을 절대 쓰지마! 라는 것보다 욕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욕 좀 제대로 하고 삽시다. 



2012. 11. 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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