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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論

교육 -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

멀고느린구름 2012. 10. 17. 22:47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소년일 때의 나는 혼자 동네 뒷산에 가기를 즐겼다. 우거진 숲 속을 거닐다 어느 정도 높은 곳에 다다르면 탁 트인 하늘과 깨알 같은 집의 지붕들이 보였다. 앉기에 안성맞춤인 바위를 찾아 걸터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매료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생각하곤 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토록 나의 마음을 이끄는 것일까. 그 시절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향, 촉감에 푹 빠져지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요즘에도 때때로 하염없이 붉게 젖어드는 저녁 놀을 보면 가슴이 뛴다. 자연은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최근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 덕에 '아, 자연이 이래서 아름답구나' 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지난 전체회의 때였다. 모래놀이터에 있는 어여쁜 곤충 장식들이 자꾸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나는 무식하게도 곤충 장식에 손 하나 까딱하지 말도록 하는 안을 내놓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CCTV 설치 안도 나왔다. 경민이가 장난으로 그 안을 낸 아이를 향해 "천재다!"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노을께서 약간 아이들을 골려보는 듯한 느낌으로 감시자를 두어서 점심시간 내내 모래놀이터를 감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감시자는 CCTV 안을 천재적이라고 칭찬한 5학년 남자 아이로 제안했다. 교사들이 재밌어서 적극적으로 노을의 의견을 지지했다. 교사들은 아마도 별로 현실성 없는 안이라서 표결에서 부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분위기는 역전되어 결국 점심시간에 제일 활발하게 놀러 다니는 3,4,5학년 남자아이들이 점심시간마다 돌아가며 감시를 서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었지만 남자아이들은 툴툴 대기만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를 비롯한 교사들이 모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경민이를 중심으로 3,4,5학년 아이들이 모래놀이터 옆에 감시 기지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감시 기지는 하루하루 그 위용을 갖추어가더니 옥상과 객실, 주방, 차실을 갖춘 화려한 건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아이들이 종이로 아기자기하게 만든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졌다. 골탕을 먹여보려고 표결에 손을 들었던 나는 되려 감동받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연이란 이런 것이구나. 사람이 인위적으로 물길을 이리로 가게 하려고 막아서면 무심하게 방향을 틀어 저리로 돌아간다. 그저 담담하게 자기만의 평형을 맞추어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을 보여준다.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가장 평범한 오후에도 어느 한 곳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빛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태풍이 불어닥치거나, 폭설이 쏟아지는 순간에도 자연은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늘 품고 있다. 어린이는 사람의 자연이다. 어린이에게서는 항상 빛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빛나는 순간은 끝없는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자연을 관찰하고 있으면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흘러가는 시냇물은 언제나 시냇물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우주의 시간만큼이나 늘 다른 모습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 사람의 자연인 아이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늘 새로워지려하고, 어느 순간이든 자기만의 빛을 발하려 하는 까닭이 아닐까. 


  한 없이 자연에 가까워야 할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생각, 어른들의 기대, 어른들의 인위로 좁은 그물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그런 시대에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어찌나 자연을 닮았는지 탄복하고 감사하게 된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연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지나친 어른의 기대일까. 


  아이라는 자연을 통해, 지나친 인위에 휩싸인 어른이 된 나를 돌아본다. 나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가. 내게 주어진 시련 앞에 담담히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는가. 어떠한 순간이라도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빛내고 있는가. 누가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을까. 가르치는 것은 되려 늘 아이들 쪽이다. 



2012. 10. 1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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