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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친구들이 읽어보라한 소설을

멀고느린구름 2018. 6. 29. 06:05

친구들이 읽어보라한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된 것에도 무슨 삶의 비밀스런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마쓰모토 세이초의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마치 나의 생애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듯하여 친구들이 성찬한 것처럼 작가로서 글의 완성도 측면에 집중해 읽을 수가 없었다. 


장애를 타고 태어났지만 단지 머리가 좀 좋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뿐인 한 남자가 사라진 유명 작가의 일기를 복원하는 일에 몰두한다. 나쓰메 소세키에 비견되는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 지역에 살던 시절 썼다는 3년 치의 고쿠라 일기. 남자는 장애의 몸을 이겨내며 홀어머니의 도움까지 받아 천신만고 끝에 고쿠라 지역에서 모리 오가이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찾아내 그의 고쿠라 시절 이야기를 희미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 소설의 초반부에 이미 결말을 짐작했다. 이 시도는 헛되고 헛되리라. 어쩌면 중학교 2학년 무렵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밤늦게 다락방에서 첫 소설을 써내려가던 나를 보며,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신은 혀를 끌끌차며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도는 헛되고 헛되리라. 


비참과 생활의 압력, 지난날의 공허들과 싸우는 나날이 길어진다. 태양을 향해 나아가면 나아갈 수록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차라리 돌아서서 태양을 등지면 홀가분할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뒤돌아서겠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뒤돌아설 바에는 태양에 뛰어들어 타죽겠다는 각오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왔다. 40세에도 이름을 얻지 못하면 나는 생을 끝마치겠노라고 선언했던 적도 있었다. 그 선언의 날이 머지 않을 수록,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선명해진다. 


애써 끌어낸 마음의 빛들로 초라한 등불을 밝히며 더듬더듬 비틀비틀 아직은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나아가는 곳이 앞인지 뒤인지 아직 알길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지금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오직 과거가 된 뒤에야 그 제목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지난날 품었던 마음의 깊이와 형태가 선명해진다. 내 삶의 연대기가 비로소 그려진다.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덜 소중한 것인가. 그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지금 알고 있다고,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때로 흐려지고 스러진다. 이름을 얻지 못하면 40세에 죽으리라는 내 각오도 단지 지금의 것일 뿐, 언젠가는 연대기에 넣지도 않을 번외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언젠가는 언제 당도하려나. 우리는 모두 언젠가 우유니 사막을 닮은 인생의 소금밭에 도착해, 우리가 만들어낸 결정의 형태를 한 움큼 쥐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거였군 이라며 쓴웃음을 짓고 말겠지.


출발할 때는 알 수 없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도, 좋은 삶을 살고자 싸우는 것도 

이다지도 모두가 끝없는 고통일 줄이야.


2018. 6.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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