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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당신과 나 사이에

멀고느린구름 2018. 7. 25. 07:58



당신과 나 사이에


먼저 떠난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오십 미터 이상의 거리가 있었고, 나는 늘 먼 발치에서 당신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거리의 단상에 서서 연설하는 당신, 토론회의 발표자석에서 정견을 전하는 당신, 유세차 위에서 목청을 높이는 당신.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마이크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인자하게 웃을 때 지어지는 눈가의 작은 주름 같은 것은 미처 목격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총명하게 빛나는 듯한 눈동자 뒤의 고단함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던 사이였습니다. 


제가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가 시작되고 한 해가 지난 2004년 무렵이었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 집회에 나섰고, 새만금 간척사업 저지를 위한 투쟁에 참여했고, 천성산의 도롱뇽을 지키기 위한 행진에 나섰습니다. 당신은 그 모든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당신과 나는 훨씬 더 자주 만났습니다. 함께 명박산성을 허망하게 바라보았고,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용산 참사의 피해자들 편에 섰고, 불법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밀양 송전탑 건설의 피해 주민들 곁에 있었습니다.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탰고, 재벌의 무도함을 폭로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또 한 번 시절이 지난 후에도 당신과 나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성토하는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자리에서,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여전히 함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당신을 나는 커다란 기둥처럼 여겼습니다. 당신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서 무수히 뜨고 졌던 여러 대권주자들의 이름처럼 멋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은 한 번도 높은 곳에 떠서 모두의 별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죄송하게도 나의 마음 속에서도 또한 그랬습니다. 당신은 단지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들이 울고, 분노하며, 거리에 설 때 한 켠에 우뚝 서있는 담담한 기둥이었습니다. 


엊그제 당신은 허망하게 떠났습니다. 이제 언젠가 내가 또 거리에 설 때 당신은 그 자리에 없을 겁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곁을 지키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사라졌음을 미처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합니다. 지난 14년 동안 언제나 한결 같이 가장 낮은 곳에 커다란 기둥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그 기둥이 어느 사이 내 나약한 마음 속으로 들어와 무너지려는 양심을 지키는 가장 두꺼운 기둥이 되었다는 것을.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흔한 악수조차 나눈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대가 없이 약속하겠습니다. 

신이 미처 지키지 못했던 것까지도 최선을 다해 지켜내는 한 사람이 되겠다고. 

내 마음 속에 세워진 당신의 기둥은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 한 사람이 되겠다고. 


노회찬 의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쪼록 편히 떠나세요.

사랑합니다.

 


2018. 7. 25. 당신의 오랜 동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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