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산다는 일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부끄럽지 않을까.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뷰러 형태의 책상 선반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언제나 놓여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이 쓰인 정음사  1968년 초판본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파란 책이 바로 윤동주 시인의 정음사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조명 바로 아래 있는 사진은 윤동주 시인의 사진.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나는 종종 글을 시작하기 전, 또는 마치고 나서 손을 뻗어 시인의 시집을 아무렇게나 펼쳐 본다. 그러면 매번 다른 시가 내 앞에 펼쳐진다. 오늘의 시는 '창窓'이다. 


쉬는 時間마다

나는 窓으로 갑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나 역시 학생시절 쉬는 시간마다 창녘으로 가던 소년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윤동주를 몹시도 사랑하였다. '별 헤는 밤'은 어머니와 함께 살지 못했던 나의 애송시였다.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늦은 하교길에는 벌써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했다. 내가 주로 넘어 다니던 산 언덕길에는 아직 반딧불이들도 날고는 했다. 나는 하늘과 숲 속의 두 별들 사이를 거닐며 윤동주의 시를 혼자 읊조리고 다니던 문학소년이었다. 그 시절 조그만 수첩에 써놓은 시들이 수 백 편이다. 


대학생이 되어 새로이 사랑하게 된 윤동주의 시는 '사랑스런 추억'이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온 다음에 대학교 중앙 도서관 어딘가에서 윤동주의 시집 속 그 시가 새롭게 내 앞에 살아났다.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停車場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그 날에 이르러서야 나는 겨우 알았다. 윤동주 시인도 그저 보통의 청년이었음을. 봄날의 거리,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나와 같은 스무 살 무렵의 청년이었음을. '사랑스러운 추억'을 읽으며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참회의 눈물이었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나는 윤동주를 정말로 만났구나. 이제서야 그의 손을 잡았구나. 


스무살의 초반과 중반을 거치며 나는 연희전문학교의 교정에서,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서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났다. 시인을 좀 더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의 초판본 시집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아직 온전히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있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비로소 그 부끄러움을 내 앞에 내어놓았다. 흑백 화면의 영화는 내게 무겁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 당신이 오래 가져가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부끄러움이 있으니 이제 그만 가져 가시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사무치는 부끄러움에 몸을 뒤척였다. 흑백 화면으로 되살아난 시인의 형형한 눈동자 앞에서 부끄러운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야 했다. 내 인생의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 것이다. 정지용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다독이지만 어찌 그저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잘못을 면할 수 있을까. 






영화 <동주> 속의 두 청년. 윤동주송몽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 캄캄한 밤하늘을 서로 다른 별빛으로 밝힌 두 사람이었다. 몽규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독립운동의 제일 앞에 서는 투사의 길을 가고, 동주는 늘 앞에 서 있는 친구의 뒷 모습을 좇으며 밤하늘의 별을 노래했다. 같은 시대의 밤하늘에서 밤을 보았던 몽규와 별을 보았던 동주. 동주는 캄캄한 시대의 어둠 한 가운데로 점점 달려가는 친구 몽규를 보며 별을 노래하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을 품은 자신을 점차 부끄러워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결국 출간하지 못했던 시집의 서시에 이렇게 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일... 부끄러움에 사무쳤던 한 스무 살 적의 청년이 다짐한 그의 길이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길을 걸어갔다. 더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1945년 2월 16일.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6개월 눈 앞에 두고 후쿠오카의 추악한 비밀 감옥에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청년은 눈을 감았다. 스물아홉 살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서른 살이 되어 보지 못하고 별이 되었다. 


지금 나는 윤동주 시인이 살지 못한 서른 살을 지나서 더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윤동주 시인보다 더 살았지만, 정말로 충분히 '더' 삶을 살았을까... 나는 내 삶을, 세상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스물아홉까지만 살았던 시인보다 더 사랑했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까. 고백할 수 없다. 




영화관을 나서는데 온 우주의 중력이 나 한 점에 모여서 끝 없는 저편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표현된 1930년, 40년대의 햇살들. 비록 픽션이겠지만 교토의 전차를 연모하는 여인과 나란히 타고 가던 장면, 그때 동주의 입가에 어리던 수줍은 소년다운 미소를 나는 오래 동주의 것으로 담아두게 될 것 같다. 별을 노래하며 한 줄의 시를 쓰는 일, 이국의 여인을 마음에 담아보는 일, 그 모든 소소한 일들이 '부끄러움' 속에 빨려 들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 시절을 살다 간 선배 문학가를 마음에 아로새기며 오늘의 내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불의한 시대다. 세월호는 아직 바다 속에 있고, 진실은 떠오르지 않았다. 약자는 고통을 받고, 권력자는 권세를 누린다. 청년에게는 꿈이 없다. 세상은 돈을 가진 이와 가지지 못한 이 앞에 서로 너무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강대국들은 우리와 상관 없이 그들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문명은 자연을 점점 더 파괴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시대가 불의하지 않았던 때가 있을까. 어떠한 시대이든 그곳에 사람이 있으면 의義와 불의不義가 함께 머물기 마련이다. 사람이란 언제나 의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신과 다르다. 단,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기에 또한 짐승과 다르다. 부끄러움은 밤하늘을 조그맣게 밝히는 별과 같다. 우리는 그 작은 부끄러움으로 불의를 거절하고 의를 택해야 할 것이다. 부끄러움을 품고 죽은 1945년의 청년은 영원히 청년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언제나 청년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 나를 흔드는 바람이다. 내 마음의 별은 아직 빛나고 있을까.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다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스러진 스물아홉 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내 최소한의 경의다. 



2016. 3. 28. 멀고느린구름.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