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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머무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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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틱낫한 (판미동,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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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점수 : ♥♥♥♡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세상에는 급한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한 가지를 택해서 아주 지극한 정성을 쏟아 보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동시에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118쪽

틱낫한 스님의 <화>는 많은 깨달음을 나에게 선사한 양서였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화>에서 시작된 화두가 세상으로 확장되었을 때 어떤 것들을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지 다루고 있다. 

절친한 친구가 만들어 선물한 책이어서 더욱 각별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내려 간 이 책은 갈피갈피마다 소중한 말들로 가득해 책 전체를 스크랩해두고 싶을 정도다. <화>가 마음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는 구조였다면, <우리가 머무는 세상>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으로 나아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혁명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틱낫한 스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마음을 살필 것을 권한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가들, 친환경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자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활동가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정치가들. 그들은 모두 작게든 크게든 현실의 삶에 분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화가 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집권여당이 되어봤자 그들은 또다른 화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뿐이라고 스님은 경고한다.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에 앞서 먼저 변화해야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입는 것,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선택하는 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혁명도 세월과 자본, 그리고 욕망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원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허나 또 경계해야 할 것은 마음의 수련만으로 멈추어 서는 것이다. 많은 수행자들이 개인적인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에서 수행을 그친다. 하지만 붓다나 예수의 삶을 돌이켜 보자. 그들은 모두 자기에게서 세상에게로 나아간 사람들이었다. 진정 마음을 닦으면 그 투명한 거울에 세상이 비쳐보이기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의 그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티를 닦은 수건으로 이웃의 고통도 함께 닦아내어야 한다. 바람이 불면 상대에게 붙어 있는 먼지가 나에게 날아오게 마련이다. 나를 계속 닦아내는 것만으로는 지속되는 맑음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닦고 너도 닦아서 우리가 함께 닦아져야 한다. 

나는 2003년부터 '빈그릇 운동'이라는 것을 해오고 있다. 정확히 그 처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도법스님과 지율 스님이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운동의 내용은 간단하다.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 간단한 실천만으로 세상은 많이 변한다. 음식 쓰레기를 줄이면서 국가가 얼마를 더 버는지에는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지구 위에 어느 것 하나도 생명 아닌 것이 없다. 야생의 짐승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절대로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자기가 죽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인간만이 생명에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생명을 스스로 죽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먹기 위해 무엇이 죽었는지,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죽인 것을 먹지도 않고 그냥 버린다. 우리가 죽여서 그냥 버리는 것들이 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 거대한 학살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

팃낫한 스님은 말한다.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는 훨씬 더 건강해진다. 명심해야 한다. 지구는 '내가 머무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 '우리' 속에는 인간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다. 


2010. 12.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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