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맛 커피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둔 지도 벌써 10년이다. 20대 초반의 두 해를 안암동의 보헤미안이라는 커피하우스에서 보냈다. 보헤미안은 유서 깊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보헤미안에서 나오던 날 점장님은 내게 어디 가서 커피에 관해 아는 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나는 약조했다. 물론, 철없던 20대였던 나는 그 약조를 참 많이도 깨고 말아왔다. 유서 깊은 커피 명가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은 내게 자부심으로 남아 지금 이 글에서도 이렇게 은연 중에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 마음 한 켠에는 계속 그 약조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참 모순이다. 보헤미안을 나온 이후에는 다른 가게에서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지금 내가 반복해 듣고 있는 건 산울림의 '찻잔'이다. 9월이 되고 얼마간의 열대야를 끝으로 여름은 끝이 난 것 같다. 하늘의 높이로만 보면 오롯한 가을이다. 손대면 시릴 정도로 차가울 것만 같은 파란색의 하늘이다. 여름 내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열병을 앓았다. 오래된 열망이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 사그라들다만 불씨를 일으켰다. 그것은 나를 고양 시켰고,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도록 이끌었다. 내 속의 모든 긍정성을 불러냈고 모든 친절함과 누구에게도 온전히 보내준 적 없던 사랑도 꺼냈다... * 얼마 전에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직접 내린 원두 커피를 대접했다. 도구를 모두 직장까지 가져가서 현장에서 바로 내려준 것이다.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