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설원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오래전 나는 혼자 대관령의 설원 속을 거닌 적이 있다.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을 무렵이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연애심리학 책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달랐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선의 속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재밌는 말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시나브로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차갑고 하얗게 덮는 눈. 눈 덮인 마음을 품고 설원 앞에 섰을 때, 나는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서 그저 설원 속에 자박자박 발자국만 새기며 백지 속을 휘 돌아보고 나왔다. 내 마음의 눈 위에도 ..
상우의 목소리가 페이드 아웃되면서 카오디오도 함께 꺼져버렸다. 다행히 시동은 걸려 있는 상태였다. 언제 또 무슨 문제가 발생할 지 알 수 없는 차였다. 클러치에서 발을 천천히 떼고 들어왔던 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들어왔던 곳으로는 나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차들이 계속 대로 쪽에서 한강 공원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차를 돌려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보았던 곳까지 이르렀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걸을 때는 흔하게 보였던 것 같은 안내지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면서 정유소를 본 기억은 없었다. 난감했다. 주변을 좀 더 잘 살펴보려고 내려놓았던 차창으로 차 뒤편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점점 다가오고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