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2013) Gravity 8.1감독알폰소 쿠아론출연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정보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글쓴이 평점 중력에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말한다. 그렇게 말하자면 내 고향은 부산이다. 대한민국의 남동쪽 끝단,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그런데 질문자가 만약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나는 모국인 '대한민국'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재차 묻는다면? '지구'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고개를..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풀어놓는 태양계 속에 자리한 아홉개의 행성과 60여개의 달에 관한 이야기는 끝도 없는 항해로로 내 마음을 떠밀었다. 어느 지점부터인가 나는 키를 놓았고, 노를 버렸다. 남자친구가 황급히 떠나간 호텔 침대 위에 누워서 아침 햇살을 맞았을 때는 먼 우주를 유영하는 보이저 1호가 된 기분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불안감. 남자친구는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 가 있는 물체라고 했다. 보이저 2호가 뒤를 따르고 있지만 둘은 아마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떠올렸던 것 같다. 시차를 달리해 태어난 두 성별의 인간은 어쩌면 1977년 8월과 9일에 각각 우주로 쏘..
의사의 첫마디는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각오를? 이라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드라마 대사는 현실을 복제했고 현실은 드라마 대사를 복제하는 세상이었으니까. 유방암이라고 했다. 비극의 드라마가 다 그렇듯이 초기는 아니었다. 중기와 말기의 사이라고 했다. 가파른 언덕을 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쉼터가 나올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올라왔던 비탈길로 고꾸라져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의사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 속의 번역일 뿐. 병원을 나오는 길에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보다 작은 손. 창백한 손. 남자친구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해 지구를 표현하기를 즐겼다. 창백한 푸른 점. 엄마의 손은 창백한 하얀 점. 그 손에 지구의 운명이라도 달려있는 듯 조심스..
바람이 분다, 가라 -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첫째는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유한한 것이므로, 밤하늘을 눈부시게 밝히려면 무한대의 거리에서 오는 빛이 있어야 한다. 즉, 무한한 과거에 형성된 은하가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리의 시선이 어떤 별의 표면에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순간 - 별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시작된 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 두번째이자 더욱 결정적인 대답은 허블에 의해 관측되었다. 바로 은하들이 우주의 팽창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하가 우리의 눈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은하가 뿜어내는 빛은 약해진다. 눈부신 은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거리가..
눈을 떴더니 우주 속에 홀로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5분 정도밖에는 기억할 수 없었다. 앞은 물론 뒤로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만져지는 것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만지다’라는 언어 자체가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살려달라고 외쳤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공기의 입자들이 공간 속에 못처럼 박혀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무엇도 흘러가지 않고 흘러들지 않았다. 망연해진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내가 앉은 곳이 바닥인지 허공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혹은 내가 정말 앉은 것인지 혹은 그대로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워버린 것인지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어차피..
1. 인간, 지구, 그리고 우주 사람의 생이란 저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고, 137억년이라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아주 잠시 머물다 가는 것에 불과한 순간 동안 인간이 과연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가 근원적인 회의를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단란한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일정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무리 없이 살아나가기를 기대하고, 어떤 사람은 대권에 도전하는 인생을 꿈꾸며, 또 어떤 이는 재계의 거물이 되기를 욕망한다. 각자 이 사회, 또는 국가, 나아가 세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관에 따르자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