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완결) 갈게, 나는 웅크리고 앉은 K를 등지고 파란 문으로 걷는다. K는 엷게 흐느낀다. 우스운 눈물이다. K는 어차피 나를 안지도 않을 것이면서, 나를 잃을 것을 염려한다. 내가 갖기는 싫고, 남주기는 또 아깝다는 그런 흔해빠진 마음이다. 나는 K에게 그 정도일 뿐이다. 소유욕의 강도에 따라 존재의 가치를 평가 당하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다. 고개를 돌린다. K는 그대로다. 화가 난다. 그에게 욕을 퍼붓고 싶다. 그러기에 이곳은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달의 뒷편에서 누군가에게 욕을 퍼부은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인생은 얼마나 초라하겠는가. 잠깐, 나는 더 살아가는 것일까. 저 문 뒤에서 더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K의 염려대로 나의 생은 여기서 끝이 나는 걸까. 나는 Y를 사랑했었다. 오랜 열..
2 그래서 말인데, K의 목소리가 진지하다. 응.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우리 서로 정리해야할 것들을 정리하자구, K는 정해진 대본을 읊듯이 말한다. 분명 몇 번이고 되뇌어본 말일 것이라 여기니 피식 웃음이 난다. 너도 참 이럴 때 웃음이 나와? 그래도 우리 사귄 게 자그마치 7년이었다고, K는 당황한 표정이다. 응, 그 7년이 이렇게 기묘한 곳에서 끝이 난다니 웃음이 나오네. 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정리한다는 말일까. 7년의 세월을, 그 속에 깃든 갖가지 사연들을, 함께 갔던 장소와 함께 듣던 노래,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음식의 품목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일까.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다. 포맷이 불가능하다. 바탕화면에 있던 것을 폴더의 폴더, 그 폴더의 폴더 속쯤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