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첫째날 노무현이 죽었다. 딸아, 나에게는 그 일이 큰 사건이었다. 나는 병실에 누워 그 소식을 소리로만 들었다. 간병인들이 수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낙관했다. 평소대로라면 하루를 그렇게 보냈을 거야. TV 같은 것은 요 근래 거의 켜지 않았으니까 말야. 헌데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간병인이 화장실에 간 틈에TV를 켰어. 그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나는 혼자 슬픔을 맞이하고 싶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간병인 없이. TV 속에는 온통 전 대통령의 사진과 넋이 나간 그 측근들의 표정뿐이었다. 영상과 자막, 소리가 총 동원되어 이건 사실이니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그쪽의 지지자가 아니다. ‘아니었다’보다는 ‘아니..
16.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개 대담회 에 대한 국민적, 아니 세계적 관심은 엄청난 것이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을 끌어내리고 시청률 1위에 올라선 것은 물론, 그 수치는 38.1%라고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에 이른 것이다. 국내 시청률에 잡히지 않은 전 세계 시청률까지 합치자면 그 기록은 아마 1964년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한 순간을 실시간 중계한 방송의 순간 시청률를 뛰어넘는 것이었을 거다. 덕분에 나는 연말에 공중파 3사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통합 연예대상에서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상과 최고의 피디상, 2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댓가로 방송 이후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 - 와 관련된 인터넷 기사만 589건이 양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