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한다. 그에 비해 이야기를 마친 김곱단 할머니의 표정보다 오히려 차분하다. 인터뷰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다. 태양이 아직 중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가을 하늘은 하루하루 아스라하게 높아져서 태양은 며칠 전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김곱단 할머니는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에서 감과 포도를 내어 온다. 단단하게 익은 감의 껍질을 깎아내며 담담히 입을 뗀다. 곱단 : 선생님, 놀라셨겠지요. 이 늙은이가 살아온 인생은 그 다음부터는 절망이 반이요, 목숨 부지가 반이었습니다. 내가 이 과도 하나를 손에 쥐게 되는 것만도 40년이 넘게 걸렸지요. 환갑이 되어서야 겨우 용기를 내서 칼을 손에 쥘 수 있었답니다. 매일 매일 밤마다 달콤한 꿈과 함께 그 마지막 날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
곱단 : 선생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면 안 될까요? 나 : 네? 곱단 : 가슴이 너무 아파서 더는 못하겠어요. 나 : 가슴이 어떻게 아프신데요? 곱단 : 얘길 한다고 선생님이 어떻게 제 가슴 속을 알겠나요... 내일 다시 봅시다. 부탁드립니다. 나 : 아뇨, 할머님... 그렇게 머리를 숙이시지 마시고요. 그렇게 하셔도 이건 안 되는 겁니다... 곱단 :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나 : 어유... 할머님, 알겠습니다. 근데 내일부터는 그 선생님 호칭도 좀 바꿔주세요. 제가 할머님보다 훨씬 덜 살았는데요. 특별기획으로 지면을 대거 할애하여 싣는 인터뷰도 아니고, 고작 한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어 있을 뿐인, 잡지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인터뷰였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부장에게 항의 전화를 넣었을 테지만 ..
나 : 먼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노파 : 김곱단입니다. 나 : 네, 김곱단 할머님이시군요. 올해 연세는 어떻게 되십니까. 곱단 : 엊그제가 팔순이었어요. 나 : 아,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이렇게 정정하시군요. 듣기로는 직접 저희 잡지사로 인터뷰 요청을 해오셨다는데, 특별한 연유가 있으십니까? 곱단 : 부끄럽지만... 제가 초등학교를 올해서야 졸업했어요. 한글도 이제 막 읽을 수 있게 되고 보니 꼭 새로 사는 것만 같고... 별 의미 없는 생이었지만, 그래도 80 먹은 노인네가 가슴에 품은 얘기 한 자락 누가 들어주면 좋겠다 싶어서 늦게 배운 글씨로 편지 한 통 보내봤지요. 나 : 네에. 그러셨군요. 편지를 보니깐 어떤 분을 찾고 계시다고 쓰셨는데 어떤 분인가요. 곱단 : 61년 전에 한 남자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