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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모든 것의 원리
'The Theory of Everything(만물의 이론)', 작년 12월에 개봉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랑담을 다룬 영화의 원래 제목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연인 관객들을 모으기 위한 업계측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제목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바꾼 것은 영화의 주제를 왜곡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티븐 호킹의 역저 <시간의 역사>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뒷편의 언덕을 따라 한 없이 걸어 올라가면 구립도서관이 나왔다. 그곳에서 나는 학창시절의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나는 삶과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았었다. 왜 사람은 태어나서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는가. 애초에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세상이라면 왜 존재해야만 했는가. 신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이나 생명을 창조한 것일까. 오랜 시간 그 질문에 매달렸다. 당연하지만 아직도 그 해답은 명쾌하게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금씩 조금씩 작은 답들을 찾아가며 나는 앞으로도 무언가 더 분명한 결론을 향해 계속 질문하고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수학'과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아마도 내가 떠올린 것과 유사한 질문들의 답을 찾고자 삶을 바쳤던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과학적 상식으로 자리잡은 여러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사람이며,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인생을 영화화한다고 한다면 영웅적인 서사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허나 친절하게 번역된 제목처럼 영화는 스티븐 호킹의 영웅담이 아니라, 그의 사랑담을 다룬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감독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그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고 그를 사랑했던 한 여인, '제인'에게 메인 카메라를 비춘 것일까.
제인은 스티븐 호킹의 첫 번째 아내다. 그리고 아마도 호킹의 마음 속에서는 영원한 아내일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스티븐과 제인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허나 스티븐에게는 루게릭병이 발병하고 만다. 스티븐의 병을 알면서도 제인은 스티븐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스티븐은 걷지 못하게 되고, 물건을 잡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말마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제인은 그의 곁에 묵묵히 머문다. 제인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인으로서 무신론자에 가까웠던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을 적극 응원한 것도 아니었다. 제인은 스티븐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어떤 일을 하든, 그저 스티븐이라는 개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어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배척되는 신념을 가진 이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아닐까.
결국, 스티븐 호킹은 제인의 헌신 속에서 세상을 뒤발꿀 한 권의 책 <시간의 역사>를 집필해낸다. 그리고 살며시 아내 제인이 믿었던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말을 책 속에 함께 싣는다.
'만물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사고의 실마리를 풀어간 장본인은 당연히 스티븐 호킹이다. 하지만 제인이 없었어도 스티븐 호킹은 그 일을 해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쉽게 어떤 역사적 성과를 개인의 위업으로 기록하곤 한다. 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이 이겨냈고,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어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일들은 깊이 파고들어가면 갈 수록 대부분 엄청난 인과의 고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애초에 이순신 장군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어머니의 뱃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혹은 반대파의 힘이 훨씬 더 컸더라면, 수군들이 이순신 장군의 의기에 감응해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마음을 지닌 우리의 윗세대 어른들이 묵묵한 땀방울을 흘리지 않았더라면. 역사에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 관성적으로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는 가정의 집합체다. 아주 작은 확률의 변화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미미한 행동이,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다음에 올 미래를 송두리째 바꾸는 나비의 날개짓이 된다.
제인이 없었어도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역사>를 저술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구절을 책 속에 써놓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한 구절에 지나지 않지만 어쩌면 그 한 구절이 없었다면 <시간의 역사>는 한 과학자의 흔한 과학서적으로 시간의 역사 속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조그만 긍정이 유럽과 미국에 거주하던 대다수의 유신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독자층을 광범위하게 만들었다는 가정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스티븐 호킹이 없었더라도 제인이 있었다면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스티븐 호킹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이 영화의 제목이 반드시 <만물의 이론>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론을 탄생시키는 뿌리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의학을 탄생시키고, 우주에 대한 사랑이 천문학을 태어나게 한다. 서양어로서의 철학(philosophy)이 '지혜(sophy)에 대한 사랑(philo)'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류가 종을 보존하고 있는 것도, 문명을 쌓아올리고 있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사랑의 힘이다. 사랑의 힘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끌어당김'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그래비티>는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 중력을 우주적 사랑에 비유한 바 있다. 빅뱅의 폭발 에너지에 의해 끝없이 퍼져 나가려는 우주의 먼지와 기초 입자들은 강력한 끌어당김에 의해 뭉쳐져 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생명은 태어났다.
전쟁이란 형태를 통해 폭발하는 인류의 파괴적 에너지를 평화로,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돌려놓는 것 역시 사랑이다. 스티븐 호킹은 죽음의 운명, 또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싸워 이긴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제인이다. 그 원리는 두 사람의 '사랑'이다. 사랑, 그 모든 것의 원리. 지금까지 인류가 알아낸 것 중에서는 '만물의 이론'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2015. 3.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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